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게 TPP 재가입 가능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TPP 탈퇴를 발표한 지 1년 3개월 만에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미·중간 무역 갈등이 극에 달한 가운데 트럼프가 돌연 TPP 재가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자 ‘중국 견제용’, ‘농민 눈치 보기’ 등 여러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기간 내내 “TPP는 재앙과 마찬가지”라며 “미국의 이익을 뺏고자 특수한 이익집단이 추진한 협상”이라고 비난했다. 지난해 1월 취임한 뒤 트럼프는 자신의 대선 공약대로 TPP를 탈퇴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 트럼프는 TPP에 대한 태도를 조금씩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트럼프는 조건부로 TPP에 복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기존보다 미국에 더 나은 조건이라면 TPP를 재검토할 것”이라며 “이전의 TPP는 형편없고, 구조는 끔찍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도 트럼프는 “미국이 좀 더 나은 조건을 제시받는다면 TPP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이후 TPP 재협상에 필요한 준비 작업이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TPP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뜻이나 다른 국가를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뚜렷하게 나타낸 적이 없다. 또 TPP를 검토하기 위한 부처 간 조율이나 절차가 진행된 것도 없다. 그러는 사이 미국을 제외한 TPP 회원국 11개국은 지난달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공식 서명했다.
트럼프의 이날 발언을 두고 TPP를 중국과의 무역 전쟁 무기로 삼으려 한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존 튠 공화당 상원 의원은 “중국의 관심을 끌고 싶다면 그 지역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 경쟁국과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벤 사스 공화당 상원 의원은 “중국은 사기꾼”이라며 “중국이 쓴 속임수를 갚아주는 방법은 태평양에 있는 개발도상국들을 미국이 이끌고, 그들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를 두고 종종 쓴소리를 날리던 벤 의원은 “우리는 TPP를 주도해야 한다”며 “미국이 TPP로부터 소외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피터슨국제연구소의 게리 후프바이어 무역 전문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는 지금 동맹국을 확보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과의 무역 갈등으로 피해를 보는 미 유권자들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미국의 순 농가소득 전망치는 최근 10년 간 가장 낮은 수준인 595억 달러(약 63조7840억 원)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 대비 6.7% 줄어든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중국의 보복관세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민들에게 손해를 보상해주겠다고 밝히며 농심(農心) 달래기에 나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