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자(單子)’의 본뜻이 ‘부조하는 물건의 품목을 적은 작은 종이’임은 어제 말했다. 그렇다면 요즈음 신부들이 제일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는 예단은 어떤 의미일까? 예단은 ‘禮單’이라고 쓰는데, 單은 單子라는 의미이고 ‘禮’는 ‘예절 예’라고 훈독한다. 글자대로 풀이하자면, ‘예물의 품목을 적은 단자’라는 뜻이다. 신부가 시댁 사람들에게 인사를 올린다는 의미에서 드리는 선물, 즉 예물의 목록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 ‘예단’을 아예 ‘예물’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예단 이불’이라는 말이 그런 예이다. 선물을 물건으로 하지 않고 현금으로 하는 경우가 늘면서 ‘예단비(禮單費)’라는 말도 생겨났다. 문자대로 풀이하자면 ‘예물을 적은 목록 비용’이라는 뜻이다. 글쎄? 예물의 품목을 적는 목록을 작성하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들까? 예단비라는 말은 처음부터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예물 대신 현금을 준비했다면 당연히 ‘예물비’라고 해야 맞다.
어떤 ‘신부학교’에서는 ‘예단비 드리는 법’이라는 과목을 설강(設講)하여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장차 시부모가 될 분들께 선물비라는 명목의 돈을 드리러 가는 날 지켜야 할 예절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예단(실은 ‘예물’)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며느리를 구박하고 심지어 이혼을 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만 계산하려 드는 매우 천박한 풍조이다. 일부 졸부들이 그런 행위를 보이더니만 이제는 사회 전반에 그런 분위기가 퍼져 있다. 한심한 일이다.
최근에는 소박하고 건강한 ‘작은 결혼식’ 바람이 싹트고 있다니 참 다행이다. 취업이 안 되어 가뜩이나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돈이 있다는 이유로 어법에도 맞지 않는 ‘예단비’라는 말을 쓰며 행세를 하려 드는 졸부들의 치졸한 모습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