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 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거액의 대미 무역흑자를 내는 중국을 정조준하면서 동시에 동맹국들에게까지 총구를 들이댄 모양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과의 무역에 불만을 가진 나라가 무수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실수라며 미국은 동맹국들과 손을 잡았어야 했다고 8일(현지시간)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하면서부터 중국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는 것은 무역 불균형 때문이라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발표한 국가안전보장 전략에서도 “매년 중국 등 경쟁국이 수천억 달러 상당의 미국 지식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불공정 무역 관행을 확대하는 동시에 주요 산업 기밀 기술, 인프라에 투자함으로써 유럽에서 전략적인 발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는 미국이 지식재산권 침해나 산업 스파이 피해로 연간 2270억~5990억 달러(약 641조5290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추산했다. 중국은 2025년까지 주요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을 육성할 목적으로 기술 이전과 산업 스파이, 지식재산권 침해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손보려 했다면 오히려 동맹국들과 손을 잡았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 중국을 상대로 공조 대응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2012년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을 제소했다. 이들은 2014년 승소했고 중국은 수출 제한을 철폐했다. CEA도 중국을 상대로 WTO에서 싸우고 있는 국가가 여럿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월에도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가 WTO에 중국을 제소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후속 대응을 게을리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과 관세 부과 등 독자적인 행동에 나섰다.
무차별 무역전쟁 감행으로 동맹국들이 등을 돌리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고독한 싸움을 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십 년 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각각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는 여기서 더 나아가 8일 중국에 대미 무역 흑자를 1000억 달러 줄이도록 요구했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3750억 달러였다. 1000억 달러는 26.7%에 해당하는 규모다.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폭탄이 중국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보이자 노골적으로 무역흑자 축소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의 대미 수출 철강은 미국 수입량의 11%에 그쳐 캐나다나 EU 등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EU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에 즉각 보복을 시사했다. 6일 EU 집행위원회는 28억3000만 유로(약 3조7577억 원)에 달하는 미국산 제품에 고율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리스트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미국산 크랜베리, 오렌지 주스, 피넛 버터 등이 목록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EU가 보복 조치를 언급하자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겠다며 바로 맞불을 놨다. 중국도 “손해를 초래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 조치에 불만을 가진 국가들과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중국은 물론 각국의 보복으로 미국 경제가 궁지에 몰릴 상황에 직면했다. WSJ는 미국의 기술 분야 리더십이나 미국 수출품의 부가가치 등이 큰 위협을 받을 것이라면서 이는 철강·알루미늄 수입 확대의 위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의 근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엘리 래트너 전 국가안보부 보좌관은 최근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경제의 문을 억지로 열기 위한 메커니즘은 거의 실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