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극히 이례적인 개입으로 미국 정부는 6일 열리기로 했던 퀄컴 주주총회에서 브로드컴 측 이사 후보 6명이 표결을 거쳐 뽑히는 것을 경계했다고 WSJ는 설명했다. 현재 퀄컴 이사는 총 11명으로, 브로드컴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인수가 수월해질 수 있다.
브로드컴은 현재 퀄컴을 1170억 달러(약 126조 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한 상태다. 성사되면 IT 산업 사상 최대 규모 인수·합병(M&A)이 된다. 퀄컴은 그동안 브로드컴의 인수가가 너무 낮다며 부정적이었으나 최근 양사가 인수 협상에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주주총회 연기는 퀄컴 인수에 미국 정부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한다.
브로드컴은 이날 성명에서 “컬컴이 지난 1월 미국 정부에 비밀리에 조사를 요청했다”며 “우리는 전날 밤에야 이를 알게 됐다. 퀄컴은 브로드컴과의 의사소통에서 해당 요청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퀄컴은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의 명령을 준수하기 위해 최소 30일간 주주총회를 연기할 것”이라며 “브로드컴이 CFIUS의 조사에 놀랐다는 주장은 실제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일반적으로 CFIUS는 인수 협상이 합의된 이후에 검토에 나서며 이후 해당 거래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될 것으로 간주되면 대통령에게 차단을 권고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개입한 표면적인 이유는 기밀 정보와 관련된 사업을 다루는 퀄컴을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브로드컴이 인수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 무선통신인 5세대(5G) 이동통신망 기술을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이 견제 배경에 있다고 WSJ는 풀이했다.
전 세계 통신사업자들과 IT 업체들이 차세대 고속통신 규격인 5G 전개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G는 자율주행차량과 가상현실(VR) 등 신기술에 필요한 초고속 이동통신 실현을 약속하는 기술이다. 화웨이테크놀로지 등 중국 통신장비 제조업체들도 5G 개발에 뛰어들었다. 퀄컴은 5G 개발에 있어 미국의 선두주자 중 한 곳이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브로드컴이 과거 인수한 기업을 해체하고 사업을 다른 곳에 매각했던 이력을 경계하고 있다. 브로드컴이 퀄컴 사업을 매각하면 미국은 5G 선두기업을 잃게 된다.
소식통들은 또 퀄컴이 약화하거나 브로드컴의 산하에 들어가면 화웨이에 선도적인 위치를 더욱 강화하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AT&T 등 미국 이통사들이 화웨이 통신장비를 사용하는 것 이외 선택의 여지가 없어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수십 년 전 3G 개발은 유럽이 주도했으며 현재 4G 표준은 미국이 압도했다. 5G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선두주자에 있다. 인터디지털의 지난해 초 집계에 따르면 5G 규격과 관련한 제안 전체에서 중국 기업이 차지한 비중은 34%로 가장 컸다. 건별로 살펴보면 화웨이가 234건으로 1위를 차지했고 미국 기업 중 최다인 퀄컴은 168건, 인텔은 103건을 각각 기록했다.
브로드컴은 미국 정부를 안심시키고자 본사를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이전할 방침을 내비치고 있다고 WSJ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