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4차 산업혁명 속도내려면… 일자리 안정 통한 기업가 정신이 포인트“

입력 2018-03-0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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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 장병규 위원장은 “택시업계가 4차위를 믿어 준다면 해커톤에 참여하는 스타트업과 승차공유 문제와 관련해 그 어느 곳보다 중립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택시업계가 마음을 열고 해커톤에 참여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 장병규 위원장은 “택시업계가 4차위를 믿어 준다면 해커톤에 참여하는 스타트업과 승차공유 문제와 관련해 그 어느 곳보다 중립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택시업계가 마음을 열고 해커톤에 참여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가 출범한 지 5개월째 접어든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입법권이 없어 시작부터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지 미지수였던 단체다.

4차위의 선장을 맡은 장병규(45) 위원장을 만났다. 1년 임기의 절반을 향해 가고 있는 시점인 만큼 중간평가를 듣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출범 후 4차위에 대한 보도가 각종 매스컴에 범람했다. 장 위원장은 그게 부담이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니 알맹이가 없었다. 당분간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던 그를 끈질긴 설득 끝에 만났다.

앞서간 중국 뒤쫓아가는 후발주자

장 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앞서간 중국을 뒤쫓는 후발주자”라면서, “젊은이들이 기업가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먼저 만들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엇보다 안정된 일자리 제공을 핵심으로 꼽았다.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존의 논리에서 역으로 청년 일자리가 안정돼야 4차 산업혁명이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장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이투데이와 만나 “국내 4차 산업혁명 속도가 중국에 뒤처지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기존 전망과 달리 큰 틀에서 일자리 창출과 기업가 정신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은 규제 한두 개를 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를 실현하려는 과정 즉, 기업가 정신이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 취업난에 시달리다 보니 안정을 추구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기업가 정신은 사라진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먼저 안정적인 일자리를 풀어야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이 기업가 정신이 생기게 되고, 이 선순환 구조가 4차 산업혁명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엔진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이어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청년 일자리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이 4차 산업혁명을 푸는 열쇠일 수 있다”며 “젊은이들이 도전하다가 실패하더라도 괜찮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4차위 업무에 대한 중간 평가도 내렸다. 장 위원장은 “눈에 띄는 업적이 없어 최상의 평가를 하긴 힘들지만, 민감한 이슈를 가진 이해당사자들을 모아 끝장토론 방식의 해커톤을 통해 나름대로 결론을 도출해 낸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해커톤 방식을 반신반의했던 지원단(4차위 공무원)들도 지금은 필요성을 인정하게 됐고, 해커톤이 4차위의 고유한 프로세스로 자리 잡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해커톤은 ‘해커’와 ‘마라톤’에서 따온 정보기술(IT)업계 용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특정 기간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집중적으로 작업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일컫는다. 민(民)과 관(官)이 머리를 맞대는 토론 과정을 거쳐 사회적으로 찬반이 갈리거나 공론화가 필요한 문제의 해결책을 ‘보텀업(bottom-up·상향식)’으로 찾는다. 진행 방식은 직급과 부서에 얽매이지 않고 1박 2일 동안 끝장 토론을 한 뒤 부서장에게 즉시 의사결정을 받고 실행하는 ‘KT의 1등 워크숍’에서 착안했다. 해커톤이 기존 공청회나 숙의민주주의 과정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평소 생각해온 장 위원장의 아이디어였다.

장 위원장은 “애초 해커톤은 반년에 한 번씩 하려고 했는데, 국회의원들처럼 민관 협력을 직접 해 본 분들이 더 자주 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며 해커톤을 격월로 개최하기로 한 배경을 설명했다.

‘해커톤’ 반신반의하던 지원단 공무원들도 인정

해커톤의 성공 요인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회의 진행’이 꼽힌다. 그는 “실제로 부문별 회의 진행자는 한 과제를 두고 특정한 편에 서지 않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며 “해커톤에는 KT직원(퍼실레이터, 토론전문가) 2명이 들어가 회의를 이끌고 교착상태에 빠지더라도 회의가 끝날 무렵에는 내용을 정리, 합의문을 만들어 회의를 진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커톤 방식으로 핀테크(금융정보의 자기결정권), 위치정보보호법(위치정보사업 활성화를 위한 법 폐지 필요성 검토), 혁신의료기기(첨단 혁신의료기기 개발 및 시장 진입 추진을 위한 규제 개선), 공인인증 등 민감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

다만, 당초 논의 과제였던 라이드셰어링(차량공유) 문제는 아직 한 차례도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참여를 희망하는 스타트업과 달리 최근까지 택시업계가 참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위원장은 택시업계가 참여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택시업계가 해커톤에 참여하려면 무엇보다 4차위가 중립적으로 대화의 장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며 “택시업계는 기본적으로 4차위를 믿지 못하고 있다. 택시업계가 마음을 열고 해커톤에 참여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택시업계의 태도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꼬집었다. 그는 “택시업계가 카풀앱 관련한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으면 택시의 미래는 없다”고 못 박았다.

택시 업계는 카풀앱 불법 논란을 주장한 장본인이다. 4차위는 지난해부터 네 차례에 걸쳐 택시업계에 토론 참여를 요청했지만, 택시업계가 모두 거절했다. 당장 사업을 하고 있는 ‘풀러스’ 같은 카풀앱 스타트업은 비상이 걸렸다. 논의를 통해 불법 논란을 잠재우고 서비스를 정비해야 하는데, 논란만 계속될 경우 사업 자체가 흐지부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 위원장은 “스타트업 한두 곳을 살리기 위해 20만 명의 택시업계를 다 죽일 수 없지 않나. 택시업계가 정부를 믿고 논의를 해야 규제가 풀리고 제도가 달라지면서 변화된 세상에 맞는 제도가 새롭게 탄생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대화 테이블에 나서지 않으면 강제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우리가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했다면 IMF 위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택시업계도 마찬가지다. 자율주행차 등 미래 신기술이 들이닥치고 있는데, 능동적으로 변화를 준비하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구조조정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수의 이해관계 집단으로 얽혀 있는 택시업계의 구조로 인해 이들의 의견을 모두 조율하기 어렵다는 점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택시업계를 믿겠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택시업계가 해커톤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심사숙고한다면 4차, 5차 해커톤에 참석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례 하는데 묘한 애국심 생기더라

4차위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이지만, 입법권이 없어 영향력이 없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4차위가 입법권이 없어 강제력이 없는 것은 맞지만, 4차위에서 나온 의견들이 일단 유의미하다고 인식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며 “해커톤을 통해 (민감한 이유에 대해)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가이드라인이나 시행령을 만들어 나가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히려 사회적인 합의를 거친 것은 특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강제력이 있는 게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공식적인 것(입법권)과 비공식적(4차위 활동)인 것이 함께 있는 게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평생을 자유로운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온 그에게 공직은 무거운 짐일 수 있다. 실제로 위원장에 임명된 후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만만치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적응을 끝내고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듯했다.

장 위원장은 “늘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다가 규모가 큰 복합조직(4차위)에서 일하는 만큼 지금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최근에 국민의례를 하는데 묘한 애국심이 생기더라. 생업에 돌아갔을 때 직원들에게 ‘우리는 왜 블루홀에서 일하는가’에 대한 것을 표상화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귀띔했다.

**장병규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문재인 정부의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게임개발사 블루홀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다. 1973년 4월 25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KAIST 전산학과를 나와 네오위즈와 ‘첫눈’을 창업했다. 첫눈을 NHN에 매각한 뒤 게임개발사 블루홀스튜디오를 설립했다. 벤처투자사인 본엔젤스를 창립해 스타트업 육성에도 참여하고 있다. 성공한 1세대 벤처기업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정책과 혁신성장을 주도할 적임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에는 ‘해커톤’이라는 끝장토론 방식을 적용해 찬반이 갈리는 어려운 주제에 대해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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