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는 김영남과의 대화 내용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우리(일본)의 생각을 전달했다”라고 설명했다. 납치 문제나 핵·미사일 개발 문제와 관련한 생각을 전달했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올림픽이라는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여 북한 관리들과의 비공식 접촉에 나선 것이다. 아베 총리가 처음에는 평창행을 거절했다가 마음을 바꿔서 개막식 참가를 결정한 이유는 바로 이런 외교적인 성과를 노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개회식 때는 아베 총리의 바로 뒤에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앉았지만,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아베 총리로서는 김영남과의 접촉으로 북한 측에 충분히 의사를 전달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한편 자민당의 차기 총재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전 간사장은 10일 일본 TBS TV 방송의 ‘시사방담’ 녹화에서 평창 올림픽의 분위기를 말하며 “마치 북한이 주역으로 뜬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누가 올림픽을 주재하고 있나요? 마치 북한이 주역으로 올라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서 남북 간 접촉에 경계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이처럼 정치색이 짙은 올림픽은 처음이다. 북한이 여러 방법을 쓰고 있다”며 올림픽 이후 북한의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현재 대북 제재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2월 10일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은 방일한 네덜란드의 할버 자일스트라 외무장관과의 만찬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압력을 강화하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네덜란드는 현재 유엔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이고 북한 제재위원회의 의장국이기도 하다. 이번에 처음으로 방일한 자일스트라 장관은 고노 외상과의 회담에서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는 북한 문제에 대부분을 할애했다. 두 외무장관은 앞으로 여러 국제회의의 의장들과도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을 최대화하기로 합의했다.
고노 외상은 이 자리에서 북한을 견제하는 것과 동시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한·미·일이 긴밀히 공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8일 군사 퍼레이드를 실시한 사실에 대해서는 “북한이 올림픽 전날에 미사일을 과시했으므로 핵·미사일 개발의 뜻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아베 총리의 이번 방한에 대해선 75%가 넘는 일본인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FNN이 10일, 11일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가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 맞추어 한국을 방문한 것에 대해 물었더니 “방문한 것이 다행”이라는 대답은 76.9%, “방문하지 말아야 했다”는 대답은 19.5%였다. 이것은 아베 총리의 한국 방문이 외교적인 성과가 있었다고 보는 일본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촉구한 데 대해서는 “지지한다”가 83.8%, “지지하지 않는다”가 10.5%였고, 평창 올림픽 이후 북한이 핵 실험과 탄도 미사일 발사를 재개할 것이 “우려된다”가 88.7%, “걱정하지 않는다”는 8.3%였다. 북한에 대한 압력을 최대한까지 높인다는 한·미·일의 방침에 대해서는 “지지한다”가 74.8%, “지지하지 않는다”가 19.9%였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볼 때 앞으로도 아베 정권은 북핵 문제 해결을 내세워서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려는 정책을 유지할 것이고,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한국 측 이행을 촉구하는 종래의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외교와 역사 문제를 분리하자는 문재인 정권의 두 트랙 방식과 같은 방식을 일본 정부도 채택하겠다는 뜻이다. 한·미·일 공조와 위안부 합의에 대해 내용면에서 한·일 간 차이가 있다. 다만 두 트랙으로 한다면 항상 대화의 길이 열려 있으므로 문제 해결의 길이 그만큼 다양해진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외교적인 수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