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 3세 자녀를 둔 30대 후반의 주부 A 씨. 지난 주말 남편, 아이들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창고형 할인마트를 찾았다. 가격이 좀 비싸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아이들을 위해 LA갈비 재료와 호주산 쇠고기, 당근을 비롯해 남편과 먹을 횟거리, 아이들 간식 등을 카트에 담아 계산대로 왔다. 상품 개수는 12개에 불과했지만 계산원이 상품 바코드를 인식할 때마다 휙휙 올라가 20만 원에 육박하는 결제금액을 보는 순간 아이들에게 해줄 LA갈비를 빼야 하나 고민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올 1월 소비자 물가가 1%대 상승률로 안정세를 보였다고 했지만, 막상 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 체감하는 식품 가격은 정부의 발표와 거리가 멀었다.
9일 설을 앞두고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최근 발표한 올해 설 차례상 비용은 대체로 안정된 모양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설 차례상을 차리는 평균 비용은 20만 원에서 30만 원 사이로,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전년보다 2% 안팎이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역시 1년 전보다 1.0% 상승하면서 1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무, 배추 등 농산물 가격이 기저효과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내렸고, 전기·수도·가스 요금 등이 안정되면서 물가 오름세가 둔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올겨울 신선식품 가격 인상을 부추긴 한파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어 있다. 언뜻 보면 물가가 안정된 것 같지만 작년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를 비롯해 최순실 사태에 따른 정부의 물가관리 기능이 마비돼 물가는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상태다. 올해 소폭 올랐다고 하지만 ‘기저효과’에 따른 착시현상이라는 의미다.
한국물가협회가 매주 내놓는 주간 생활물가 시세표(서울)를 보면 소비자가 많이 찾는 삼겹살(500g)은 7일 기준 1만620원으로 작년 초보다 10.0% 떨어졌지만 2015년 초보다는 20% 이상 올랐다. 특히 올겨울 한파에 상추, 시금치, 오이 등은 40~60% 이상 급등했다.
당근은 올해 가격이 전년보다 50% 떨어졌지만 지난해 이미 160% 이상 급등한 터라 2년 전과 비교하면 31% 오른 상황이다. 이밖에 사과(300g)도 개당 2000원으로 작년과 변동이 없으나 2016년보다는 14%가량 올랐고, 감귤(100g)은 작년과 재작년 모두 급등해 2년 사이 133% 뛰었다. 이렇다 보니 돼지고기와 고등어, 오징어 등 소비자가 자주 찾는 식재료에 일부 신선식품, 공산품만 장바구니에 담아도 10만 원을 훌쩍 넘기가 예사다.
주부 P 씨(55)는 “야채와 과일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 시장에 가서 좋은 물건을 봐도 선뜻 손이 안 가더라. 사과 한 상자도 2만5000원 하던 게 4만3000원까지 올랐다. 조금 저렴하게 사려고 농산물 도매센터를 찾았는데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