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성지’ 실리콘밸리에서 위기 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애플과 알파벳(구글 모회사)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닷컴 페이스북 등 미국 IT 업계 빅5의 기세에 눌려 스타트업들이 성장할 여지가 사라진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 검색과 쇼핑 내역 등 빅데이터 자원을 독점하다시피 한 이들 거대 기업이 젊은 스타트업을 속속 인수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혁신의 원천이었던 IT 산업의 신진대사가 쇠약해지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독점적 지위에 미국 기업의 개업률이 4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12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분석했다.
미국 상무부 집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창업 1년 미만의 젊은 기업은 41만4000개로, 최근 고점인 2006년보다 26% 줄었다. 미국 기업 전체에서 최근 1년 안에 새로 설립된 업체 비중을 나타내는 개업률은 8.1%로, 글로벌 금융위기 전의 약 10%에서 하락했으며 통계가 시작된 1977년 이후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IT 빅 5가 압도적인 사업 기반을 바탕으로 데이터와 자금, 인력자원 등을 싹쓸이하면서 젊은 스타트업들이 아무리 좋은 아이템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빅5에 대항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여행사이트 익스피디아를 거쳐 현재 세계 최대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의 최고경영자(CEO)인 다라 코스로샤히는 “구글과 페이스북이 스타트업에 대해서 불평등하게 독점적인 지위에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아마존이 지난해 인공지능(AI) 스피커 ‘에코’를 발표하면서 스타트업 뉴클리어스가 먼저 개발한 제품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사실 뉴클리어스는 아마존으로부터 창업 지원을 받았으며 개발 과정에서도 서로 협력했다. 아마존은 에코의 독자성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젊은 스타트업으로부터 과도하게 기술을 흡수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메릴랜드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창업 침체가 하이테크 산업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호르헤 구즈만 교수는 “유망한 성장의 씨앗을 지닌 ‘높은 잠재력’이 있는 기업 비율은 줄어들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들 신생기업이 잠재력을 발휘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확률은 예전보다 낮다”고 말했다.
리서치 업체 피치체크에 따르면 IT 빅5는 지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600개 이상의 기업을 인수했으며 총액은 20조 엔(약 200조5420억 원)에 달했다. CB인사이트는 2011~2016년 첨단 AI 분야 기업 인수 선두를 구글이 달렸고 애플은 3위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젊은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회사를 키우기보다는 빅5에 매각하는 것이 유력한 출구로 떠오르고 있다. 뉴욕의 한 30대 기업인은 “어떻게 빅5에 우리 회사를 매각할지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창업 이후에도 빅5를 도와주는 것에 그쳐 스타트업들의 경쟁 조건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기술 혁신은 기업의 신진대사를 촉진해 경제 활력을 창출했다. 신기술의 대두로 빅5를 능가하는 회사가 생겨야 이런 성장이 가능해진다고 신문은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