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복 SC제일은행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SC제일은행 본점에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금융권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노조 추천 사외이사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 행장은 1979년 제일은행에 입행해 2015년 은행장에 오른 ‘정통 제일맨’이다. 취임 2년 만에 흑자전환한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다. 박 행장으로부터 SC제일은행의 경영 전략과 금융권 현안에 대해 들어봤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최고경영자(CEO)의 경영권 승계, 임원 선임 과정 등을 지적한 것인데, 당국이 제기하는 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견해와,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원론적으로는 동감한다. 각 은행들의 내부 사정은 잘 몰라도 언론에 보면 ‘셀프연임’ 얘기가 많이 나온다. 승계 절차, 선발 풀 관리가 제도화되고 실질적으로 투명하게 가는 게 당연하다. 국내 은행들도 승계 프로세스에 대해서 글로벌 수준으로 선진화하는 게 맞다고 본다.”
-SC제일은행의 후계승계 프로그램은 어떻게 돼 있나
“관리자(부서장급) 이상은 최소 3명 이상 후보풀을 갖고 관리한다. 연수 과정이나 개인 코칭을 통해 관찰하고, 6개월에 한 번씩 리뷰를 한다. 변동이 생기면 그 풀에서 뽑는다. 그 풀에 들어간 사람들끼리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된다. 로컬 후보뿐만 아니라, 필요하면 외부나 그룹 차원에서 영입하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임추위(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이사회에 있고 행장 후보를 추천할 때에는 행장이 제외된다"
-은행권 노조가 노조추천 사외이사 선임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추천 사외이사에 대한 입장은
“컨센서스가 더 이뤄져야 한다.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아직 안 가 본 길이고, 보는 시각에 따라 장단점이 있다. 이 부분은 신중히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협업과 견제가 균형이 되어야 하는데, 그걸 구성원과 이해 당사자 모두가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논의가 성숙되어 모두의 신뢰가 있을 때 도입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SC제일은행의 첫 한국인 행장으로 선임돼 어려운 시기를 거치며 2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뤘다. 책임감이 컸을 것 같은데 경영적인 측면에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나
“2015년 행장 선임 당시 SC제일은행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외국인 행장이 10년간 경영하면서 노사, 당국, 언론 등 모두가 바닥까지 간 상황이었다. 이때 뼈아픈 고통을 감내했다. 2014년, 2015년 2년 동안 적자가 난 건 소매금융 부문의 개혁을 위해 의도적인 결정이었다. 10년간 현지에 맞지 않게 소매금융을 운영해 너무 망가진 것이 원인이었다.”
-당시 ‘적자은행’이란 말도 있었는데, 의도적인 적자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소비자금융 부문을 일시에 정리했다. 당시 지금의 중금리대출에 해당하는 대출채권이 4조 원 정도 있었다. 은행 중에 가장 많았다. 이 채권의 부실이 발생하면서 어려웠다.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판매 조직을 그룹 차원에서 한번에 정리했다. 은행 건전성 차원에서 대출모집인 2000여 명을 없애고, 판매하던 대출상품을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5000억 원을 충당금으로 적립했다. 또 항아리형 인력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2015년 직원 1000여 명을 내보내는 과정에서도 5000억 원 정도를 썼다. 이는 미래를 위한 고통을 감내한 것이다.”
-2016년 상호에 ‘제일은행’이란 명칭을 다시 넣었는데, 그 이유와 변경 이후 성과는
“소매금융의 회복이 시급했다. 리테일은 브랜드 장사다. 고객이 ‘스탠다드차타드’라는 이름을 모르는데 간판부터 영어로 바꿔 버렸다. ‘제일은행’이라는 명칭을 되살리지 못하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고 판단해 그룹 회장과 담판을 지었다. ‘믿어라, 나와 한국을 믿고 베팅하라’고 말했다. 간판을 ‘SC제일은행’이라고 다니까 고객도 다시 오고, 직원들도 안정을 찾았다. 그 효과는 서서히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수년간 점포와 인력을 축소하는 다운사이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너무 과도한 축소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과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모든 은행의 가장 큰 딜레마가 다운사이징이다. 이를 알기에 선제적으로 점포를 없애고 인력 구조조정을 했다. 희망퇴직을 통해 2015년 908명(2013년 138명, 2014년 248명, 2016년 115명) 등을 내보내면서 항아리형 인력 구조를 정리했고, 점포는 239개로 줄였다. 외부에서는 철수설이 돌기도 했지만, 그럴 계획은 전혀 없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 ‘몇 년 후에 누가 맞는지 보라’며 큰소리를 쳤다. 미래를 위해서 최적화(optimization)하는 작업이었다. 다만 자산관리를 위해선 거점이 필요하다. 이건 디지털로 안 되는 부분이 많다. 또 상위 1%를 위한 대형 점포를 둘 게 아니라, ‘중산층을 위한 자산관리’를 하기 위해서도 일정 규모의 점포가 필요하다.”
-작년 3분기 누적순익이 전 분기 대비 15%가량 증가할 만큼 실적이 좋다. 지난해 결산 실적 발표와 함께 3월 이사회에서 배당금 성향도 정해야 할 텐데, 본사와의 합의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주주들은 한국에 투자한 비용이 큰데, 그동안 많이 못 받아 간 측면이 있다. 스탠다드차타드가 진출한 국가 중 한국의 ROE(자기자본순이익률)는 가장 낮다. 하지만 한국인 행장인 만큼 현지 상황도 많이 고려할 것이다. 배당은 자율사항이지만. 당국이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처럼 자본 안전성이나 바젤3 등 향후 자본 규제에 대비해 균형 있게 하려고 한다. 구체적인 부분은 시장 상황을 보고 결정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은행들도 디지털금융을 강화하고 있다. 디지털금융 사업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SC그룹과 한국이 시너지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SC그룹 진출 국가 중 제일 먼저 출시한 키보드뱅킹도 홍콩, 대만에 출시를 준비 중이다. 그룹 14개 나라에 수출할 예정이다. 블록체인 기술도 싱가포르와 홍콩은 이미 블록체인 프로젝트 2단계에 들어갔고, 나중에 한국에도 도입할 것이다. 혼자 다 할 수 없으니까 서로 공유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의 사회공헌 비율이 1.72%로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낮은 편인데, 사회공헌 부문의 지원 규모를 늘릴 계획은 없나.
"참여형 사회공헌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전 직원이 일정시간 이상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매출액이나 이익금 규모로 봤을 때 적게 보일 순 있지만, SC그룹 본사에서 1년에 해야 하는 할당량을 받는다. SC그룹의 모든 국가가 정해진 자원봉사 횟수를 채워야 한다. 의무적으로 실천하는 부분을 들여다보면 결코 적지 않다"
-내년이면 입행 40년을 맞는다. 특히 한 은행에서 행원으로 시작해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금융인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가르침이 있다면.
“‘Human’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AI)시대가 와도 핵심은 사람이고, 나머지는 도구라는 생각이다. ‘휴먼은행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고 지난달 3일 시무식에서 빌 윈터스 회장과 그룹 전체를 ‘휴먼은행’으로 선포했다. 이날 빌 윈터스 회장은 ‘절체절명의 시기에 박 행장이 자신과 한국인을 믿어 달라고 해서 베팅했는데 성공했다’라고 한 말씀이 감명 깊었다. 조직 내 소통이 잘되고 그 결과가 고객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선순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은 누구인가.
박종복(63) SC제일은행장은 1955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청주고와 경희대 경제학과를 나와 1979년 제일은행에 입행했다. 그는 PB사업부장, 영업본부장, 소매채널사업본부장, 리테일금융총괄본부 부행장 등 은행 영업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쳐 2015년 1월 은행장에 선임됐다. 2016년에는 은행 이름을 한국 SC은행에서 ‘SC제일은행’으로 바꿔 제일은행이라는 이름을 부활시키고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12월 연임이 확정돼 2021년까지 앞으로 3년간 SC제일은행의 수장을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