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유상증자’ 제대로 보기

입력 2017-12-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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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자금은 인간의 혈액과 같은 존재다. 충분한 자금이 꾸준히 순환되어야 건강한 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자금 순환이 원활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 기업은 이자나 원금상환이 필요한 차입, 채권 발행, 유상증자 가운데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지를 고른다. 이 가운데, 신주를 발행해 자본을 늘리는 유상증자는 상장사의 대표적인 자금 조달 수단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유상증자 이벤트는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마냥 긍정적인 소식이 아니다. 오히려 매의 눈으로 전후 사정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최근 삼성중공업 주식을 보유하였던 주주들은 이에 통감할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이달 초부터 하한가에 가까운 하락 폭을 연속적으로 기록하더니 27일에는 주당 7000원까지 떨어졌다. 1개월 전과 비교해 볼 때 반토막 수준이다. 장중에는 7000원선도 무너져 52주 신저가도 다시 썼다.

하락 사유는 수년간 지속한 조선업 불황에 따른 대규모 실적 부진과 유상증자 예정 공시다. 삼성중공업은 작년 11월에도 1조1000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번 1조5000억 원 규모의 증자를 단행할 경우, 2년간 약 2조6000억 원을 유상증자로 조달하게 된다.

직원들에게 성장의 과실을 돌려주기 위해 마련된 우리사주제도의 역설도 빚어졌다. 필자는 작년 삼성중공업이 유상증자를 실시할 당시, 우리사주 조합원들을 위한 대출을 실행하기 위해 거제도 삼성중공업 조선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약 2000명의 삼성중공업 직원들은 신주 상장일의 주가 대비 20% 할인된 주당 7170원에 자사주를 취득했다. 유상증자 시 우리사주조합원이 우선 배정받을 수 있는 특례조항 덕분이었다. 이후 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보호예수 만료일인 11월 27일 기준으로 무려 67%의 수익을 거뒀다. 유치 활동 때 안전모를 쓰고 작업복 차림의 투박한 손으로 계좌 개설 신청서를 작성하던 삼성중공업 직원들의 얼굴이 떠올라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실제 일부 조합원은 보호예수기간이 종료됨과 동시에 주식을 팔아 높은 차익을 실현했다.

문제는 대다수 조합원들이 회사의 실적 개선을 기대하며 계속 주식을 보유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보호예수가 풀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가는 급락해 유상증자 발행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공시 전 주식을 매도한 일부 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직원들은 크게 실망하는 등 희비가 엇갈렸다. 후자의 경우 1년간의 대출금 이자와 유상증자로 보유하게 된 주식의 평가손, 예고된 유상증자 참여를 위한 추가 대출 등 3중고의 부담을 안게 됐다. 결과적으로 근로자들의 회사에 대한 소속감 고취와 재산 형성에 기여하기 위한 우리사주제도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

우리사주뿐만 아니라 주주가치 희석에 따른 기존 주주들의 피해도 상당할 전망이다. 현재 삼성중공업의 상장주식 수는 3억9000만 주로 코스피 시가총액 100위 기업 중 14번째로 큰 기업이다. 시가총액도 2조8000억 원으로 60위 수준이다. 신주가 발행되면 상장주식 수는 6억 주를 넘어서게 돼 주가 상승 부담도 커진다. 결국 투자자들은 주식 보유로 인한 평가손을 껴안은 채 상당 기간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급격하게 불어난 주식 수는 장기적으로 삼성중공업 주가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한 번에 많은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에는 이자나 원금 상환 부담이 있는 차입이나 채권 발행보다 유상증자가 더 유리한 선택지일 수 있다. 또한 주주 배정의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신주인수권의 권리를 부여하므로 주주 우대라는 명분도 함께 챙길 수 있다. 그러나 대주주가 아닌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는 주식 수 증가로 인한 주가 희석이 신주의 할인발행률보다 더 클 수 있다.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유사 기업들에 투자할 때는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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