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피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이하 FTP)이 오히려 기업의 정상화에 방해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과 FTP를 맺은 은행들은 신규자금을 지원하기는 커녕 채권 회수에만 열을 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27일 이투데이가 입수한 전 코스닥 상장사 엠텍비젼과 하나은행 등이 맺은 FTP 계약서를 보면 엠텍비젼은 FTP 가입 즉시 현금 186억 원을 일시에 은행에 변제했다. 이는 2009년 8월 기준으로 엠텍비젼에 정산된 키코 손실금 357억여 원 중 50% 수준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관련기사 3면>
이 현금변제 비율은 당시 주채권은행이었던 하나은행과 씨티·외환·우리은행 등 채권단 의결에 따른 것이다. 키코 손실금에 대해 기업이 50%를 정산(현금변제)하면 나머지 50%는 대출로 전환시켜 추후에 갚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엠텍비젼을 비롯한 피해기업들은 FTP 제도의 취지대로라면 대출 비중을 100% 수준으로 높여 기업이 보유한 현금을 유지시켜 줘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채권은행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엠텍비젼은 당시 보유한 현금 전액에 가까운 186억 원을 우선 변제에 사용했다. FTP에 가입할 경우 키코 손실분을 출자전환 해주겠다는 은행의 구두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10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가 합동으로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방안’을 발표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은행은 출자전환을 이행하지 않았고 엠텍비젼은 유동성 위기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게 됐다. 엠텍비젼이 186억 원을 채무 변제하자 은행은 약 154억 원을 대출로 대신 갚아줬지만 이 대출금은 은행 내에서 자체적으로 키코 손실을 변제하는 데 쓰였을 뿐 회사로 유입되지 않았다.
특히 ‘저리’라고 믿었던 키코 손실금 전환대출이 쌓이면서 신용등급에 영향을 줘 자금난이 가중되는 결과가 발생했다. FTP 대출에 한해서만 4~5%대 저리를 적용받았을 뿐 이외 대출 건에서는 전체 부채가 늘어난 영향으로 금리가 13% 이상까지 오른 것이다. 은행들은 엠텍비젼과 FTP 계약(통상 B등급까지만 체결)을 맺고서도 이 회사의 신용등급을 재기 불가 수준인 ‘D’로 평가해 높은 금리를 적용하기도 했다.
조붕구 키코 공동대책위원장은 “FTP는 은행이 망하기 직전의 기업에서까지 키코 이익금을 회수해 가도록 도와준 제도”라며“은행은 신용보증기금 등 정부의 보증이 확대됐음에도 이를 기업에 제대로 연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