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금융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정부는 우선 공공기관부터 시행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향후 민간 금융회사로 확대될 수 있는 만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 대선 공약이어서 금융권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개혁안을 마련 중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혁신위)는 금융위원회 실무 부서와 이 같은 방안에 관해 조율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원이 직접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노조가 추천하는 인사가 참여하는 ‘노조 추천 이사제’를 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다만 혁신위의 권고안을 추진하더라도 KB금융 같은 민간 금융회사보다 공공기관에 먼저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혁신위의 권고안을 최대한 존중하기로 한 만큼, 권고안에 담길 경우 입법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더라도 결국 법제화는 국회의 권한”이라고 덧붙였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는 이런 당국의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류제강 KB국민은행지부 수석부위원장은 “경제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움직임에 환영한다”며 “시작은 공공기관에서 하더라도 사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전환될 수 있는 좋은 시그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열린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KB노조협의회측이 주주제안을 통해 노조추천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된 3호 안건을 올렸지만 주총에서 출석 주식수 대비 17.73%의 찬성에 그쳐 부결됐다. 주총 직전 KB금융 최대주주인 국민연금(9.79%)이 찬성 입장을 밝혀 파장이 일었다.
박홍배 노조 위원장은 “내년 3월 주총에서 사외이사 추천을 재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KB노조는 6개월 내에 동일한 인물을 사외이사 후보로 올릴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 새로운 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할 계획이다.
금융권은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아무래도 경영 간섭이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며 "경영진 입장에서는 어떤 사안에 대해 브레이크가 걸리게 되면 원활한 경영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조측 대변 이사가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갖고 오느냐도 문제다" 라며 "한쪽 입장만 극단적으로 주장하게 되면 이사회가 파행되거나 포퓰리즘으로 흘러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혁신위원장을 맡은 숭실대학교 윤석헌 교수는 “제도 도입의 가부와 형태까지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있어 아직 단정적으로 얘기하기는 이르다”고 전했다. 윤 교수는 평소 노조추천 이사회에 대해 “노동계나 직원 추천 인사가 들어가게 되면 경영권 견제 효과와 함께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며 “이사회가 5~6명 이상으로 구성되는데 노조 추천 인사 한 명이 들어간다고 해서 경영권 침해를 얘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