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에피스가 설립 5년만에 유럽 시장에 총 5개의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허가받았다. 모기업으로부터 투자받은 풍부한 실탄을 활용, 빠른 속도로 연구·개발(R&D) 성과를 냈다. 5개 중 2개의 바이오시밀러는 시장 선점을 예약하며 복제약의 시장성과 밀접한 개발 속도에서도 의미있는 이정표를 남겼다. 다만 모기업의 추가 투자를 기대하기 힘들고 더 이상 퍼스트 바이오시밀러 발굴 가능성도 희박해 본격적으로 상업적 성공에 대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설립 5년만에 유럽서 바이오시밀러 5종 승인..글로벌 톱10 시장 최다 진출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로부터 항암 바이오시밀러 ‘온트루잔트’의 최종 판매허가를 승인받았다. 온트루잔트는 로슈의 항체의약품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로 조기 유방암, 전이성 유방암 및 전이성 위암 등에 사용되는 약물이다. 허셉틴은 연간 7조9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이로써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총 5종의 바이오시밀러를 유럽에서 판매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1월 ‘엔브렐’ 바이오시밀러 ‘베네팔리’의 유럽 허가 획득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플릭사비’를 허가받았고, 올해 들어 란투스, 휴미라, 허셉틴 등의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유럽 관문을 통과했다.
미국 시장에는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렌플렉시스’와 란투스 바이오시밀러 ‘루수두나’(잠정 승인)가 허가받았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5년 12월 ‘엔브렐’ 바이오시밀러 ‘브렌시스’의 판매를 시작했고 지난해 7월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렌플렉시스’를 발매했다. 최근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하드리마’와 허셉틴 바이오시밀러 ‘삼페넷’의 허가를 받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세계 제약업계 중 유일하게 ‘엔브렐’, ‘레미케이드’, ‘휴미라’ 등 블록버스터 자가면역질환 치료제(TNF알파 억제제) 3종의 바이오시밀러 제품의 유럽 허가를 받은데 이어 항암제 영역에도 첫 발을 뗐다. 회사 측은 "글로벌 톱 10 의약품의 바이오시밀러를 최다 보유한 기업으로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개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2월 설립된 이후 5년 9개월만에 얻어낸 결실이다. 삼성은 지난 2010년 바이오의약품을 신수종 사업으로 지목한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각각 2011년 4월, 2012년 2월 설립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모기업으로 투자받은 풍부한 자금을 활용해 단기간내 R&D 성과를 쏟아내는데 성공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모기업으로부터 총 1조405억원을 조달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94.6%)와 바이오젠(5.4%)의 합작법인이다.
설립 초기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삼성그룹으로부터 투자를 받고 이 중 일부를 삼성바이오에피스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자금이 유입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1년 7월부터 2015년 7월까지 11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그룹으로부터 총 1조1784억원을 투자받았다. 이 중 5784억원을 삼성바이오에피스에 유상증자 참여 방식으로 투입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주요주주 바이오젠의 유상증자 참여금액을 합쳐 총 6405억원을 투자받았다.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11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면서 모집한 2조2496억원 중 4000억원을 두 차례에 걸쳐 삼성바이오에피스에 투자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측은 "투자금과 차입금을 포함해 약 1조3000억원 가량을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투입했다"라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 개발 속도전에서도 국내외 걸출한 기업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유럽 허가를 받은 5개 제품 중 베네팔리와 온트루잔트는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판매 허가를 받은 퍼스트 바이오시밀러 제품이다. 세계 바이오시밀러 기업 중 엔브렐과 허셉틴 시장을 선점하며 향후 시장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 베네팔리의 경우 올해 6월 허가받은 산도스보다 1년 5개월 가량 앞섰고, 온트루잔트는 지난해 11월 허가 신청한 셀트리온보다 한발 앞섰다.
바이오시밀러와 같은 후발의약품(복제약)의 경우 시장 선점이 성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노르웨이의 경우 단일 입찰로 1개의 회사만이 독점 공급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바이오시밀러의 시장 진입 시기가 매출과 직결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측은 “비슷한 시기에 허가 신청한 경쟁사들을 제치고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유럽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라고 자평했다. 레미케이드, 란투스, 휴미라 시장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속도로 바이오시밀러의 유럽 허가를 획득했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기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Anti-TNF-α) 제품 뿐만 아니라 항암 항체치료제 분야에서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연구개발(R&D) 역량을 인정받았다"라고 말했다.
◇온트루잔트, 마지막 퍼스트 시밀러 유력..상업적 성패 기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질지 여부가 회사 입장에선 가장 중요한 숙제로 지목된다.
유럽에서 판매 중인 ‘엔브렐’ 바이오시밀러 ‘베네팔리’가 매출 상승을 견인했다. 베네팔리는 지난해 2월부터 바이오젠이 유럽에서 판매 중인데 올해 3분기까지 2억5320만달러(약 28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베네팔리의 매출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베네팔리는 지난 1분기와 2분기에는 각각 6530만달러(약 720억원), 8870만달러(약 98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3분기에만 9920만달러(약 1100억원)어치 팔렸다.
하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고한승 사장은 지난 2015년 인천 송도 본사에서 회사 비전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에서 '2025년 매출 2조원 영업이익률 60%'를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더욱이 베네팔리의 성장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측하기 힘들고, 또 다른 바이오시밀러 제품들 모두 상업성을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 지난해 유럽 시장에 데뷔한 플릭사비는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470만달러(약 52억원)로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제품은 유럽에서만 바이오젠이 판매하고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지역의 판권은 MSD가 보유한다. 한국은 유한양행이 최근 판매를 시작했다.
아직 표본은 많지 않지만 시장에 가장 먼저 출시한 퍼스트 바이오시밀러(베네팔리)와 후발주자로 뛰어든 제품(플릭사비)의 희비가 엇갈린 모습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유럽에서 고전 중인 레미케이드 시장에는 셀트리온의 ‘램시마’가 플릭사비에 비해 3년 이상 시장에 빨리 진입하며 항체 바이오시밀러의 성공시대를 열었다. 셀트리온의 해외 판매사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올해 3분기까지 램시마의 매출로 4167억원을 기록했다.
현재로서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 중이거나 개발 완료한 제품 중 온트루잔트가 마지막 퍼스트 바이오시밀러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임랄디는 내년 특허만료 이후 가장 먼저 시장에 진입하지만 경쟁 업체들과 동시에 출격한다는 점에서 독점적으로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초 허가받은 란투스 바이오시밀러는 MSD와 공동 개발 제품일 뿐더러 이미 베링거인겔하임·릴리가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선점했다. 아바스틴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임상3상시험을 진행 중이지만 지난해 말 암젠·엘러간이 허가를 신청했다.
미국 시장의 경우 유럽에 비해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늦게 열린데다 아직까지는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성공 사례를 배출한 적이 없어 현재로서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시각이 많다. 유럽 의약품청(EMA)은 2005년 바이오시밀러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데 반해 미국 식품의악품국(FDA)는 지난해 처음으로 항체의약품의 바이오시밀러의 허가가 시작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입장에선 유럽의 허셉틴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상업적 성패에 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회사 관계자는 “허셉틴 시장은 유럽에서 30%를 차지한다는 점이 긍정적인 요인이다”라고 전망했다.
허셉틴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의 선점이 매출로 이어지기까지 변수도 많다. 온트루잔트는 투여에 1시간 이상 소요되는 정맥주사이지만, 오리지널 제품인 허셉틴은 자가투여도 가능하고 5~7분 투여로 약효가 나타나는 피하주사도 보유하고 있다. 피하주사 제형의 적응증이 정맥주사에 비해 다소 적지만 후발주자 입장에선 쉽지 않은 경쟁인 것만은 분명하다.
셀트리온(2016년 허가 신청), 암젠·엘러간(2017년 허가 신청) 등 후발주자와의 격차가 크지 않아 단기간내 시장 선점 효과를 거둬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유럽 허셉틴 시장에서의 성공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자립 경영의 지속성을 위해서도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당초 삼성그룹은 바이오의약품 시장 진출을 선언할 때 2020년까지 2조1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2015년 7월 유상증자 참여를 마지막으로 총 1조1484억원을 출자한 이후 그룹 차원의 지원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해 상장 이후 4000억원을 삼성바이오에피스에 투자했지만 추가 투자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R&D 재원 확보를 위해 상장 등을 통해 추가 자금을 조달하는 시나리오도 있지만 현재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다. 당초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5년부터 지난해 상반기 목표로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했지만 나스닥 시장의 전반적인 급락세로 자금조달 계획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 상장 시기를 미룬 상태다.
현실적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제품들이 상업적인 성과로 이어져 추가 R&D 자금으로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가 이상적인 시나리오 중 하나다. 국내외 시장에 속속 진출하는 제품의 실적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자립경영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해외 판매 제휴업체의 매출 전망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단계적으로 제품력을 알리면서 시장에 안착하면 상업적인 성과도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