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손편지] 감나무도 해거리하거늘…

입력 2017-11-1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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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농장에 있는 감나무에 올해는 감이 가지가 찢어져라 열렸다. 작년엔 눈을 씻고 봐도 감 그림자도 못 찾았었는데 올해는 지나가는 동네 분들마다 감탄사를 연발할 만큼 소담스레 열렸다. 작년하고 올해가 왜 이리도 다른지 여쭈었더니 “감이 해거리를 하나 보네” 하고 말씀해주셨다.

하기야, 작년에 감이 하나도 안 열리는 바람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지라, 올해는 설날 지나자마자 유박도 한 포대씩 뿌려주고, 잡초도 대충 뽑아주고, 동네 분들께 자문(?)해 적시(適時)에 살충약도 쳐주고 살균제도 뿌려주었다. 가지치기를 제대로 못 해줘 작은 감들이 다닥다닥 열린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감지덕지한 마음에 연신 싱글벙글하게 된다.

게다가 가지에서 잘 익은 홍시를 따서 껍질 살짝 벗겨 입에 넣을 때의 황홀감이라니. 세상에서 이보다 더 맛있는 과일이 어디 있으랴 싶다. 긴 장대를 최대한 늘린 후 가지 꼭대기에 달려 있는 홍시를 조준해서 장대 끝에 적당히 힘을 주어 당기면, 홍시가 똑 떨어져 장대 끝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그때의 스릴과 쾌감도 꽤 쏠쏠하다. 홍시가 저절로 익어 떨어진 자리엔 호랑나비들이 몰려와 날개를 펄럭이며 달디단 즙을 빨아먹기도 한다.

그렇지, 한 해가 풍작이면 한 해는 거스를 수도 있는 것을 우리 욕심에 안달도 하고 좌절도 하는 것이려니 싶다. 해거리가 자연의 섭리이듯 우리네 삶에도 해거리가 자연스레 자리하고 있을 텐데, 감나무 앞에서조차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일전에 대학 수시모집 기간에 조형예술대(예전의 미술대학) 실기시험 감독을 하러 간 일이 있다, 시험 감독 시간은 3시간. 21명이 실기시험을 치르는 고사장에 들어가니 수험생들 얼굴에 긴장이 역력하다. 오늘 하루 3시간씩 6시간에 걸쳐 치르는 실기시험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감의 표출이려니 싶다.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시험문제를 훑고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학생들 손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자니 영 마음이 편칠 않다. 채색을 시작하는 학생들 손길은 더더욱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만 같아 3시간 내내 나도 덩달아 벌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 해 흉작(凶作)이면 또 한 해는 풍작(豊作)이기도 할 텐데,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개인의 실력을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시험의 당락(當落)을 결정하는 현실 앞에서 그 누군들 자신만만할 수 있겠는지. 그나마 올해가 풍작인 해라면 운이 좋은 것이고 흉작인 해라면 운이 나쁜 것이리라 스스로를 위로할밖에.

올해 수능시험은 지진으로 인해 한 주 연기돼 23일에 치러진다. 우리 집에선 두 녀석이 기다리고 있는데, 한 녀석은 재수생이고 다른 한 녀석은 졸업 예정자다. 내내 마음 졸였을 두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인생 또한 해거리할 수 있으니 결과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 이야기해주련다. 녀석들 수고했다 등 두드려주고 기왕이면 용돈도 듬뿍 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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