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앞두고 한국 경제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모처럼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을 수 있어서다.
저효율·고비용 생산구조 심화로 위기를 맞고 있는 주력 제조업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FTA 폐기 발언까지 나오면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상이 추락할까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 성장 엔진 역할을 하던 수출은 기록적인 저유가 기조와 맞물려 2015~2016년 2년 연속 감소했다.
하지만 반도체 등 주력 품목의 선전으로 올해 한국 교역 규모는 3년 만에 1조 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수출이 역대 최대 기록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1~3분기 수출이 4301억9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8.5% 증가했다고 15일 밝혔다.
올해 분기별 수출 증가율도 1분기 14.7%, 2분기 16.7%, 3분기 24.0%로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반도체(53.9%), 석유제품(32.7%), 철강(24.7%), 일반기계(11.0%) 등의 증가율이 컸다.
우리 경제는 반도체 중심의 수출 확대를 기반으로 연초부터 미약하지만 성장세를 이어왔으나 불확실성 확대로 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소비는 줄어들고 있는 양상이다.
◇韓 ‘상품’-美 ‘서비스’ 흑자 균형 구조 = 한국과 미국의 교역 구조를 보면, 한국은 상품 분야에서 흑자를, 미국은 서비스 분야에서 흑자를 보는 구조다.
이런 이유로 한미 FTA가 미국의 무역 적자를 키운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은 자국 내에서조차 비판받고 있다.
한미 FTA 발효 이후 양국 전체 교역 규모는 성장을 거듭했다. 2011~2016년 세계 교역은 12%나 감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한미 양국 교역은 12.1% 오히려 증가했다. 한국은 협정 체결 후 대(對)미국 수입이 0.8% 감소했고, 미국의 대한국 수입은 5.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한국 수입시장 내 점유율은 2011년 8.5%에서 2016년 10.6%로 2.1%포인트 상승했다.
올 들어 한국의 수출 호조와 경기회복에 따라 대미 수입이 크게 늘어 양국 간 무역수지 규모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17년 상반기 미국의 대한국 무역흑자는 94억 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139억 달러) 대비 45억 달러 감소했다.
한미 FTA 개정으로 제조업이 추가 개방되더라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 분은 극히 미미한 것으로 분석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한미 FTA 개정의 경제적 타당성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FTA 개정으로 제조업을 추가 개방하더라도 실질 GDP는 최대 0.0007%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미 FTA 개정 협상 대응 전략은 = 우리나라 정부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협상 요구를 ‘블러핑(엄포)’으로 치부하고 재협상을 부정하면서 시간을 버는 방식을 택하면서 문제를 키웠다. 정부가 개정 협상을 지연시킨 결과 한미 FTA 재협상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북핵, 주한미군 분담금 증액 등 안보 이슈와 맞물려 논의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수세적 입장에서 개정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미국 정부가 한미 FTA 폐기 서한까지 준비한 것으로 비공식 확인되면서 우리 정부는 개정 합의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개정 협상으로 우리도 얻을 것이 있다는 게 한국 정부의 셈법이다.
미국은 한국의 가장 아픈 부분인 농업을 건드리면서 자동차나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과도한 요구를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9월 열린 한미 FTA 공동위에서 한국의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즉시 철폐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 체결 당시 쌀을 비롯한 민감 품목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하고 고추, 마늘, 양파 등 118개 품목에 대해서는 15년 이상 장기 철폐 기간을 확보했다.
미국은 한미 FTA 발효 이후 15년에 걸쳐 철폐하기로 한 농산물 관세를 당장 없애 달라고 하는 동시에 한국산 농산물에 대해서는 관세를 5~10년 더 부과하겠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FTA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농업 부문의 추가 개방 등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들어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0일 개최된 한미 FTA 공청회는 계란을 던지며 반발하는 농민단체들의 방해로 열린 지 20분 만에 무산됐다.
협상과정에서 미국의 ‘요구보따리’를 일방적으로 수긍하기보다는 챙길 것은 챙겨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미 FTA가 ‘무결점’이 아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요구는 관철해야 한다는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FTA 개선사항에 제도화 조항을 포함하면 미국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므로, 트럼프 행정부의 극단적 협상전략을 견제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관세와 원산지 문제로 협상 의제를 제한하려 하더라도, 제도화 규범 관련 조항의 개선 문제로까지 협상을 확대해 한미 FTA 개정 협상이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해야 한다”면서 “한미 FTA 제도화 조항들의 문제점을 상세하고 논리적으로 파헤쳐 그 해악을 제거하는 식으로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 교수는 “한미 FTA 재협상에서는 기존 협정에서 미진했던 분야에 대한 우리 요구조건을 효과적이고 논리적으로 미국에 제시해야 새로운 이익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