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미국 이동통신사 AT&T와 미디어 그룹 타임워너 간 인수·합병 조건으로 ‘CNN 매각’을 내걸었다.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 법무부(DOJ)는 AT&T와 타임워너 간 인수·합병을 승인받기 원한다면 타임워너가 케이블 뉴스 채널인 CNN을 매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타임워너는 CNN 외에도 HBO, 영화사 워너브라더스 등을 보유한 종합 미디어 그룹이다. 미국 2위 통신업체인 AT&T이 타임워너를 인수하면 거대 미디어 공룡이 탄생하는 셈이다.
양사 간 합병은 작년부터 추진돼 온 사안이다. 작년 10월 AT&T는 타임워너를 약 845억 달러(약 94조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미 법무부가 이제 와서 양사의 인수·합병 조건으로 CNN을 걸고넘어진 이유는 트럼프의 심기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가짜 뉴스’라고 비난하던 주류 언론의 대표다. 지난 8월 기자회견에서 CNN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질문하자 트럼프는 “너희는 가짜 뉴스다”라며 설전을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대선 유세 때부터 AT&T와 타임워너 간 합병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대선 때 트럼프 캠프는 공식 성명을 내고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AT&T와 타임워너 간 합병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소수 집단에 미디어의 힘이 집중된다는 이유를 들어 합병을 반대했다. 트럼프의 말대로 AT&T가 타임워너를 인수하면 미국 내 통신 방송 콘텐츠 시장이 대폭 재편될 수밖에 없다. 주류 언론에 날을 세우던 트럼프가 긴장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는 의미다. 법무부가 ‘CNN 매각’을 통보한 것과 관련해서 한 관계자는 “모든 문제는 결국 CNN에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9월만 해도 법무부에 마칸 델라힘 반독점 국장이 새로 취임해 양사 합병 전망은 밝아지는 분위기였다. 델라힘 국장은 기업금지법을 적용할 때 정치적 힘이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작년에 한 인터뷰에서 그는 “AT&T가 타임워너를 인수하는 것은 반독점법 위반이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델라힘 국장의 견해도 반독점 위반에 해당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지난달 말 두 기업은 올해 연말까지 인수·합병 절차가 완료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이날 AT&T의 존 스티븐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뉴욕에서 열린 투자 콘퍼런스에서 “현재로서는 거래 종료 시한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