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수준의 연구를 통해 10년 후에는 치매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예방법과 치료법, 그리고 이 병을 관리할 수 있는 연구결과물이 나오길 희망합니다.”
국가치매연구개발위원장인 묵인희(54ㆍ사진) 서울대 의대 교수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그는 정상인의 혈액을 통해 알츠하이머(치매)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진단법을 개발해 주목받은 인물이다. 살아온 삶의 절반을 알츠하이머병 연구에 매진해온 그는 이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꼽힌다. 20년 넘게 ‘치매’라는 한 분야에 대해 연구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걸출한 연구 성과가 속속 그의 손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에 겸손함이 배어있다. 그만큼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전체 노인인구 가운데 치매환자는 지난해 기준 약 69만 명, 전체 노령인구의 9.9% 수준이다. 2043년이면 이 숫자는 2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치매 치료와 관리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2010년 8조7000억 원 수준이었던 이 비용이 2030년에는 39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쯤되면 국가가 직접 나서야할 상황이다.
때마침 새 정부 출범 이후 ‘치매 국가책임제 추진계획’도 나왔다. 관련 연구와 환자를 위한 ‘국가치매연구개발위원회’도 발족돼 묵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다.
치매는 증상이 드러난 이후에 마땅한 치료법이 없고 병세의 진행을 늦출 수 있을 뿐이다. 그만큼 미리 치매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게 상책이다. 물론 지금도 방법은 있지만 150만~200만원이나 드는 ‘양전자방출단층촬영’ 검사를 단지 예방 차원에서 받기란 쉽지 않다.
서울대 의대 묵인희ㆍ이동영 교수팀이 개발한 진단법은 단순한 혈액검사로 알츠하이머 발병 가능성을 90% 정도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 임상에 이 혈액검사 방법이 쓰이기 시작하면 단층촬영 비용의 10분의 1 수준이 될 전망이다. 정상인도 간단한 혈액검사를 통해 치매 가능성을 예측하고 미리 대비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이번 성과는 기초의학자인 묵 교수와 임상의학자 이 교수의 성공적인 공동연구로 평가받는다. 묵 교수는 이런 공동연구 사례가 더 많아지기 위해 다양한 제반 요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먼저 서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게 중요합니다. 공동워크숍이나 심포지움 등 서로의 연구를 소개할 기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공유한다면 좋은 기회가 되겠지요. 지금도 여러 학회가 존재하지만 연구분야가 너무 넓어서 참여도가 저조해요. 연구자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학회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합니다.”
묵 교수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치매연구기술을 최적화할 수 있는 연구친화적 인프라와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초연구 결과가 임상연구로 연계돼야 합니다. 나아가 연구 결과물이 환자와 환자가족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한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