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자체개발한 바이오시밀러의 국내 판매를 유한양행에 맡겼다. 한국MSD가 마케팅과 영업을 전담했지만 원 개발국에서의 판매 부진이 지속되자 1년여만에 판매 업체를 전격 교체했다. 유한양행이 다국적제약사의 신약 제품 판매를 통해 영업력을 검증한데다 과거 ‘레미케이드’를 판매한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판매 적임자로 낙점된 것으로 분석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유한양행과 바이오시밀러 2종의 한국내 독점 판매계약을 체결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항체 바이오시밀러 ‘브렌시스’와 ‘렌플렉시스’의 국내 마케팅·영업을 유한양행이 전담하는 내용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지난달 허가받은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하드리마’는 이번 계약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드리마의 국내 발매 시기가 확정되면 국내 판매업체 선정작업이 이뤄질 전망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국내 시장 데뷔 1년여만에 판매 파트너를 교체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 2010년 바이오의약품 사업 진출을 선언한 이후 국내에서 2개의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내놓았다. 지난 2015년 12월 ‘엔브렐’ 바이오시밀러 ‘브렌시스’의 판매를 시작했고 지난해 7월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렌플렉시스’를 발매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그동안 MSD와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제품은 유럽에서만 바이오젠이 판매하고 한국,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지역의 판권은 MSD가 보유한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별도의 마케팅·영업 조직을 갖추지 않고 바이오시밀러의 연구와 개발만 담당한다. 삼성바이오에피스 바이오시밀러의 국내 상표권도 MSD가 보유할 정도로 깊은 제휴 관계를 구축 중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MSD는 자사 제품 포트폴리오에 대한 전략적인 리소스 배분을 검토하고 각 제품의 상업적 기회 요인에 대해 신중히 평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검토 결과 국내 판권을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반환하기로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국내 판매사 교체 이유는 부진한 실적 때문으로 분석된다.
의약품 조사기관 IMS헬스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브렌시스와 렌플렉시스의 누적 매출은 7억원에도 못 미쳤다. 브렌시스는 발매 이후 1년 6개월 가량 지났음에도 누적 매출은 6억8000만원에 그쳤다. 해외에서 ‘베네팔리’라는 제품명으로 판매 중인 브렌시스는 올해 2분기 유럽 시장에서 1억5400만달러(약 17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선전했지만 정작 원 개발국에서는 맥을 못 추는 셈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입장에선 자진 약가인하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할 수 있지만 부담스러운 전략일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서 약가가 낮아지면 해외에서의 약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더러 한번 인하된 약가는 다시 인상할 수 없다.
결국 데뷔 초반 성적표가 중요한 후발의약품 특성을 고려하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 반등을 위해 영업력 강화가 절실했고, 국내에서 가장 막강한 영업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 유한양행을 파트너로 낙점했다.
유한양행의 영업력은 최근 다국적제약사의 도입신약 판매 성과에서 검증됐다. 유한양행은 지난 몇 년간 베링거인겔하임, 길리어드 등의 신약을 판매하면서 외형을 확대했다. 특히 베링거인겔하임의 고혈압복합제 ‘트윈스타’와 당뇨약 ‘트라젠타’, 길리어드의 B형간염치료제 ‘비리어드’의 성공적인 안착을 이끌었다.
의약품 조사 업체 유비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트윈스타, 트라젠타(복합제 트라젠타듀오 포함), 비리어드는 총 3645억원의 원외처방실적을 기록했다. 3개 제품 모두 국내 의약품 매출 순위 선두권에 포진할 정도로 상업적 성공을 이뤄냈다.
트윈스타는 지난 2010년 국내 발매 이후 3년 만인 2013년 861억원으로 성장한 이후 매년 10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기록 중이다. 트라젠타와 트라젠타 듀오는 국내 시장 데뷔 4년째에 처방실적 1000억원을 넘어섰고, 비리어드는 지난해에만 1541억원의 처방실적으로 전체 의약품 매출 순위 선두를 다투고 있다.
이 중 비리어드의 경우 국내 도입 이전부터 강력한 바이러스 억제 효과와 뛰어난 안전성으로 일찌감치 ‘예비 블록버스터’ 약물로 각광받은 제품이라는 점에서 국내의 가파른 성장세는 어느 정도 예고된 성적표로 평가받는다.
트윈스타와 트라젠타의 경우 기존에 이미 유사 약물이 국내 시장에 선점했다는 점에서 유한양행 영업력의 위력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다.
2012년 발매된 트윈스타의 경우 2개의 고혈압약이 결합한 복합제인데, 노바티스의 '엑스포지', 한미약품의 '아모잘탄' 등이 이미 시장을 선점한 이후 뒤늦게 발매됐다. 그럼에도 유한양행의 영업가세로 국내 고혈압치료제 매출 1위로 올라섰다.
2012년 출시된 트라젠타는 같은 'DPP-4 억제 계열' 당뇨치료제 중 4번째로 등장한 약물이다. 당시 MSD의 '자누비아'(2008년 발매), 노바티스의 '가브스'(2009년 발매), 아스트라제네카의 '온글라이자'(2011년 발매) 등이 대웅제약, 한독 등과 손 잡고 영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유한양행은 한발 늦게 시장에 진입하고도 역전에 성공했다.
유한양행이 브렌시스 등과 같은 TNF-알파 억제제를 판매한 경험이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유한양행은 지난 2001년부터 5년 동안 쉐링푸라우코리아가 국내에 발매한 ‘레미케이드’의 영업을 담당한 적이 있다. 이후 지난 2011년 레미케이드의 판권이 얀센으로 넘어갔다. 이번에 유한양행이 판매를 시작하는 제품 중 렌플렉시스가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 제품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환자들의 바이오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으며, 성장하는 국내 바이오의약품 시장에 관심이 높은 유한양행을 최적의 파트너라고 판단해 이번 계약을 체결했다"라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입장에선 항체 의약품의 주요 타깃 시장인 종합병원에 강점을 가진 다국적제약사를 새로운 파트너로 선정할 수 있지만 전략적으로 마땅한 제휴 업체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화이자, 얀센, 애브비, 노바티스, 먼디파마 등 다수의 다국적제약사들은 국내외에서 TNF-알파 억제제와 같은 항체 의약품이나 바이오시밀러 판매를 진행하며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직간접적으로 경쟁업체로 분류되기도 한다.
물론 유한양행의 판매 가세로 삼성바이오에피스 바이오시밀러 제품들의 즉각 반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시각도 있다. 영업력이 강화되더라도 바이오시밀러가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가격 차가 미미해 가격 경쟁력이 크지 않은 편이다.
브렌시스의 보험상한가는 14만1967원으로 엔브렐(14만9439원)보다 5% 저렴하다. 렌플렉시스(36만3530원) 역시 레미케이드(38만3051원)보다 5.1% 낮은 가격으로 책정됐다.
기존 국내 약가제도에서 바이오시밀러는 특허 만료 전 오리지널의 70%까지 약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브렌시스와 렌플렉시스의 보험약가를 오리지널보다 5% 가량 저렴한 수준으로 책정했다.
바이오시밀러가 발매되면 오리지널 의약품의 가격도 종전의 70% 수준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이보다 소폭 깎으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5%의 약가 차이가 환자들에게 체감적인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지난해 10월 약가제도 개편으로 바이오시밀러는 특허 만료 전 오리지널의 80%까지 약가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이미 약가가 등재된 브렌시스와 렌플렉시스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유한양행이 다국적제약사들에 비해 종합병원 영업력이 취약하지 않느냐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유한양행 측은 "소화기 및 류마티스 내과 분야의 오랜 영업 마케팅 경험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 의약품 파이프라인이 향후 관련 시장에서 시너지를 보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바이오에피스 측은 국내 파트너 교체 이후에도 MSD와의 긴밀한 파트너십은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한국 이외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와 MSD간의 파트너십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으며 양사가 제휴를 맺은 미국·유럽을 포함한 전세계 시장에서의 협력은 지속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