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방송에서 ‘역대급’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역대급 가수, 역대급 인물, 역대급 사건…. 본래 없던 말인데 언제부터인가 한두 용례가 보이는 성싶더니 이제는 유행어처럼 번져서 드러내 놓고 사용하고 있다.
‘역대 최고 혹은 최저, 최선 혹은 최악’이라는 말에서 최고나 최저라는 말을 빼버리고 그냥 ‘역대급’이라고만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리용호 북한 외무상도 북한이 역대급 수소폭탄 시험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역대는 ‘歷代’라고 쓰며 각 글자는 ‘지나올 력(역)’, ‘시대 대’라고 훈독한다. 歷代는 ‘지나온 시대’라는 뜻이다. ‘역대급’이라는 말은 아예 성립할 수가 없다. ‘지나온 시대급’이라고만 한다면 사실상 전혀 의미 전달이 안 되기 때문이다.
‘역대 최고의 무대’, ‘역대 최고의 가수’, ‘역대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 등처럼 말해야만 “지나온 과거의 시대를 돌아보아도 이만한 무대, 이만한 가수, 이만한 사건이 없다”는 뜻이 된다. ‘역대급 무대’, ‘역대급 가수’, ‘역대급 사건’이라고만 하면 “지나온 시대급 무대, 지나온 시대급 가수, 지나온 시대급 사건”이라는 꼴의, 말 아닌 말이 되는 것이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다 보니 일상으로 사용하는 말마저 이렇게 말이 안 되는 꼴로 축약하여 일종의 유행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유행어는 언젠가는 사라진다. 유행이 사라진 후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유행어는 소멸되었지만 유행어가 활개를 치던 시절의 기록에는 이런 말들이 그대로 남아 그 기록이 후대에 전해지면 후대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암호를 대하듯이 연구하여 해독해야 한다. 소리글자로만 쓴 서양의 문장이 불과 300~400년만 지나도 해독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상의 시대라고 해서 문자가 아예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닐 테니 후대를 위해서라도 어법과 문법에 맞는 바른 말을 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