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이맘때면 국회의원의 본격적인 갑(甲)질도 시작됩니다. 그저 보좌관이 내민 자료만 들고 윽박지르는, 앞뒤 상황을 이해하거나 배경지식을 지니지도 못한 채 무턱대고 “여기가 어디라고, 당장 사퇴하세요”를 외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기업인을 국감 증인으로 불러놓고 하루 종일 기다리게 하거나 면박을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업 대표들을 국감장에 불러내는 방식이 구태의연하지만, 제법 효과는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올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통신비 할인과 관련해 이동통신 3사 CEO와 단말기 제조사 대표 등이 국감장에 나옵니다. 이 밖에 네이버 이해진 전 의장도 국감 증인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제껏 국감장에 불려 나온 기업인들의 증언 상황을 되짚어보면 헛웃음도 나옵니다. 기업인 약 76%의 답변 시간은 5분 미만이었고, 이 가운데 12%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답변 기회조차 없이 ‘대기’만 하다가 되돌아간 셈이지요. 사정이 이쯤 되면 국회의원들의 윽박지르기나 호통이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인지를 되묻고 싶어집니다.
그뿐인가요. 본격적인 국감 시즌이 시작되면 정부기관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가지고 제법 ‘언론 플레이’도 합니다. 평범했던 현안을 자극적인 아이템으로 만들고 “아니 여러분, 내가 직접 알아봤더니 세상에나 이런 일도 있더군요”라며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언론 앞에 나섭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언젠가는 ‘표심’이 필요한 정치인이니 그러려니 합니다.
문제는 국회의원의 언론 플레이 대부분이, 국감 자료의 일부가 정확한 사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국회 과기방통위 한 의원은 “단통법 3년 동안 불법보조금 단속에서 대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고 자극적인 결과를 언론에 알렸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460여 곳의 유통점의 불법보조금을 조사하는 동안 대기업은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그러나 사정은 달랐습니다. 내막을 확인해 보니 방통위는 이 기간에 대기업 유통망 2~3곳의 현장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방통위 관계자는 “굳이 해명자료를 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어차피 곧 국정감사가 시작되는데,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도 없을 것 같고…”라며 푸념했습니다.
해당 국회의원이 어떤 연유로 “대기업은 전무했다”며 자극적인 내용을 언론에 알렸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국감을 시작으로 인기 관리에 나선 국회의원들이 보다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내세우길 바랄 뿐입니다.
사족을 덧대자면 이번 국정감사에서 정부 기관의 그릇된 행태에 대한 따끔한 지적과 개선 방안도 함께 나왔으면 합니다.
단통법 시행 기간 불법보조금을 단속하면서 중소유통 대리점에 수백만 원씩 과징금을 부과했던, 그러는 동안 대기업 유통망은 ‘고작’ 2곳만 조사했던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국가기관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혼쭐을 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