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와 핀테크 물결에 전통적인 은행의 존재감이 흔들리고 있다.
존 크라이언 도이체방크 CEO는 이달 초 “로봇처럼 일하는 직원들은 로봇으로 대체할 것”이라 경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그는 “주판처럼 행동하는 회계사 시대를 마감함에 따라 도이체방크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몇 년간 구조조정과 광범위한 상여금 제한을 겪었다.
이어 그는 18일 ‘싱가포르 서밋’에서 가진 CNBC와의 인터뷰에서도 로봇으로 인한 금융권의 대량 실업을 예고했다. 크라이언 CEO는 인터뷰에서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지 말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5~10년 안에 은행의 여러 업무가 자동화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현상은 은행뿐만 아니라 금융권 전체에서 나타날 전망”이라면서 “현재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로봇처럼 일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계적으로 숫자를 적는 사람은 직업 성취감이 낮고 커리어적인 면에서도 매력이 없어 자동화 기계로 바뀌게 될 것”이라며 “단순한 숫자와 전망을 계산하는 내부직원을 감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을 지탱하며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은행의 역할도 예전같지 않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 최신호(18일자)는 “주거래 은행의 존재감은 옛말이라며 이제는 ‘생활 습관병’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과거 일본에서는 주거래 은행이 경영난에 빠진 기업을 구제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미쓰비시자동차가 경영난에 빠졌을 때 막대한 재정을 지원해 기업의 명운을 되살린 것도 주거래 은행인 도쿄미쓰비시은행이었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금융회사나 주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고 닛케이비즈니스는 설명했다. 개인의 경우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최근에는 핀테크의 부상으로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나 인터넷으로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 등 새로운 금융 수단이 등장하면서 은행의 독점 구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쓰비시UFJ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돈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취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위기를 느낀 은행이 생존방안을 찾고자 핀테크에 뛰어들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다. 일본 최대 금융그룹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에서 핀테크 관련 신사업을 담당하는 혁신 연구소의 우에하라 다카시 소장은 “핀테크 분야에서 미쓰비시UFJ 브랜드가 통용되지 않는 것을 통감했다“고 말했다. MUFJ는 지난해 1월 연구소를 설립하고 기존 경험을 살려 결제와 대출·보안·생체 인식 등 기능을 담은 플랫폼을 만들었지만 기업과의 협업 진행에 실패했다. 핀테크 영역에서는 은행의 ‘이름값’보다 기능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닛케이비즈니스는 평가했다.
반면 기술을 앞세운 핀테크 기업은 결제나 금융 중개 등 은행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해외송금 핀테크 기업 ‘트랜스퍼와이즈’가 대표적이다. 트랜스퍼와이즈는 기존 은행에 비해 해외송금 수수료가 최대 10분의 1정도로 저렴하다.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이용량이 증가하면서 급성장했다. 현재 한 달 평균 해외 송금액이 12억 달러(1조 3536억 원)에 이른다.
은행이 기존에 수행하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 기업은 경영이 불안정해지면 자산을 팔아넘기고 채권 회수를 최우선으로 한다”면서 “도시바와 샤프, 미쓰비시 등 최근 경영 위기에 빠진 기업이 걸어온 길을 보면 현재 은행이 기업의 재건을 도와 일본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전통적인 기대에 부응하는 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