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업계의 인공지능(AI) 인재 쟁탈전이 치열한 가운데 애플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AI 연구 분야는 개방이 요구되는 분야인데, 비밀주의를 추구하는 애플로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7월 애플은 AI 개발에 대해 소개하는 블로그를 개설했다. 또한 자사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AI에 관한 여러 콘퍼런스에서 강연도 하고 있다. 4월에는 음성 비서 ‘Siri(시리)’ 개발자 중 한 명인 톰 그루버가 ‘TED 토크’에서 강연을 하고, 애플은 그 동영상을 8월 유튜브에 게재했다.
애플이 이처럼 투명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애플은 중앙정보국(CIA)보다 비밀 유지에 엄격하다고 말할 정도로 비밀주의가 강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시리 등 음성 비서와 자율주행차 분야에서 AI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알파벳이나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애플의 경쟁사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AI 인재 확보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 프로그램과 관련된 교수나 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주로 뽑았다. 이러한 대학의 연구자들은 기업에 입사한 후 논문을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연구 성과를 소개하며, 자신의 연구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한다.
스탠포드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을 가르치는 노아 굿맨 교수는 “우리는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그 공적을 서로 인정하는 커뮤니티 출신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방기하는 것은 매우 불만이 쌓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굿맨 교수는 “배차 서비스 대기업 우버테크놀로지에서 연구직을 지냈는데, 우버에서는 이러한 혜택을 누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형 IT 기업 대부분이 학계의 높은 투명성 덕분에 지난 몇 년 동안 수백 건의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다고 WSJ는 평가했다. 그러나 AI 분야의 애널리스트 및 연구 전문가들은 애플이 그러한 점에서 뒤져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투명성 제고를 공개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고나서 발표한 논문은 경쟁사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적다.
현재까지 애플은 타사의 과학자들에 의해 심사를 받은 4건의 논문 일부를 회사의 블로그인 ‘애플 머신러닝 저널’에 게재했다. 올해 게재한 3건의 논문은 시리 개발팀이 만든 것이지만, 학술 논문에 싣는 개인 연구자의 이름은 빠져있다.
애플의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의 제품이다. 이러한 제품은 이노베이션(혁신)을 보호하기 위해 발표 시까지 엄격하게 비밀이 유지된다. 비영리 AI 연구단체 ‘오픈 AI(OpenAI)’의 잭 클라크 책임자는 “그것(기업문화)을 극복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애플의 블로그는 긍정적인 단계”라고 덧붙였다.
WSJ는 AI에 관한 연구에 대해 논의하는데 기업이 신중한 이유 중 하나로 경쟁 상의 우려를 꼽았다. 그러나 스탠퍼드대 굿맨 교수는 논문에 게재된 알고리즘은 독점 사양의 데이터에서만 작동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잠금 상태에 있기 때문에 기업은 일반적으로 경쟁력 상실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애플이 여전히 정보 공유를 제한함으로써 회사의 투명성 향상 노력과 연구 인력 확보에 의문이 생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의 AI 분야 애널리스트인 톰 오스틴은 “애플이 정보를 봉쇄하는 전략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애플은 작년 8월 워싱턴대학 카를로스 구에스트린 교수가 CEO로 있는 머신러닝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10월에는 카네기멜론대학의 러슬란 살라쿠트디노브 교수를 AI 연구 책임자로 임명했다. 살라쿠트디노브는 작년 12월 열린 AI 관련 콘퍼런스에서 애플이 개방성을 높여 논문 발표를 시작할 방침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코넬대학 도서관은 같은달 동영상인식에 관한 애플의 연구논문을 게재했는데, 이는 살라쿠트디노브의 애플 입사 이래 첫 논문이었다.
애플은 올 1월에는 페이스북과 MS가 설립한 AI 베스트프랙티스 개발에 임하는 단체 ‘파트너십 온 AI’에도 가입했다. MS와 구글, 페이스북 연구 부문이 올들어 발표한 AI에 관한 논문은 각각 100건이 넘는다. 스탠퍼드대의 굿맨 교수는 그러한 대조적인 상황에 대해 “(애플 입사는) 업계에 대한 일방통행처럼 느껴지는 한편, 구글과 페이스북의 AI 연구 부문은 더 들어가기 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