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71. 예성강녀(禮成江女)

입력 2017-08-0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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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상인에 끌려갔지만 끝까지 정절 지킨 고려 부인

예성강녀(禮成江女)는 고려사에 실려 있는 ‘예성강’이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부인이다. 옛날에 중국 상인(唐商) 하두강(賀頭綱)이라는 자가 있었다. 하두강은 ‘하씨 성을 가진 두목’이라는 뜻인데, 고려에서는 송나라 상인을 송상(宋商) 혹은 도강(都綱)이라고 불렀다. 즉 하두강이란 ‘하씨 성을 가진 송상 중 우두머리’ 정도의 뜻이 될 것이다.

하두강이 일찍이 예성강에 이르렀을 때 한 아름다운 부인을 만났다. 하두강은 바둑을 잘 두었으므로, 그 부인의 남편에게 내기 바둑을 제안하였다. 하두강이 계속 지면서 곱으로 돈을 주자 그 남편은 욕심이 생겨 크게 한몫 챙길 요량으로 자기 처를 걸었다. 이때 하두강이 단번에 바둑을 이기고는 그의 처를 배에 싣고 갔다. 남편이 후회하고 한탄하면서 이 ‘예성강’을 지었다 한다.

하두강에게 끌려갈 때 부인은 옷매무새를 매우 견고히 하였다. 이 때문에 하두강이 배 안에서 겁탈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바다로 들어섰을 무렵 뱃머리가 돌면서 배가 나가지 않았다. 점을 치니 정절 있는 부녀가 하늘을 감동시킨 탓이니, 그 부인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반드시 파선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뱃사람들이 두려워하며 하두강에게 권고하여 부인을 돌려보냈다. 그 부인이 지은 노래가 ‘예성강’ 후편이라 한다. 현재 ‘예성강’은 아쉽게도 전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고려시대에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예성강에는 각국 상인이 드나들었고, 그중 가장 많은 것이 송상이었다.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 전기부터 송나라가 망하는 13세기 후반까지 135건, 4976명의 송상 입국 기사가 있다. 그러나 실제 사례나 인원은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송상이 국경에 이르면 고려는 관리를 보내 맞이하였다. 사관(舍館)이 정해진 후 장령전(長齡殿)에서 그가 바치는 물건을 받고는 그 몇 배의 고려 물품을 하사하였다. 이후 송상은 시장에서 가져온 물품을 판매하기도 하고, 또 선금을 받고 주문을 받아 다음에 고려에 올 때 납품하는 주문 거래도 하였다.

이들은 몇 달 있다가 귀국하기도 했지만 몇 년씩 장기간 머물기도 하였다. 이에 처와 자식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 측 사료에는 “중국인이 고려에 가면 바람이 좋지 못해 간혹 2~3년 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이로 인해 가정을 꾸리는 일도 있다. 고려는 중국 상인이 돌아갈 때 그 처와 어린 자식을 데리고 가는 것을 금하고 있으며, 그들이 고려에 오면 다시 합친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무신란을 일으킨 정중부의 사위 송유인(宋有仁)이 처음에 송상 서덕언(徐德彦)의 처와 혼인했는데, 그녀의 재산이 매우 많았다 한다. 그녀는 송상의 현지처 출신으로 보인다.

‘예성강’ 노래가 만들어진 동기는 매우 아름답고 규범적이나 현실에서는 송상과 고려 여인 간의 결혼과 불륜, 정조 유린 등 많은 일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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