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로 대통령에 당선돼 프랑스 정치권에 돌풍을 일으켰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빠른 속도로 민심을 잃고 있다.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동시에 부인 브리지트 여사에게 ‘퍼스트레이디’ 직위를 부여하려다가 강한 역풍을 맞고 있다고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프랑스는 법적으로 퍼스트레이디 직위가 따로 없다. 퍼스트레이디를 법률에 명시해놓고 예산을 지원하는 미국과는 대조적이다. 그런데 마크롱은 대선 때부터 부인 브리지트 여사에게 공식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주고자 사무실과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이에 반감을 느낀 프랑스 국민이 마크롱의 계획에 반대하는 청원에 참여했고, 현재 15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앞서 마크롱은 국회의원들이 가족을 보좌관으로 채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국회의원들에게는 정치 개혁의 칼을 휘두르면서 정작 자신은 영부인과 관련한 입법에 골몰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민심이 등을 돌린 데는 독불장군 같은 정책 추진도 한몫 했다. 취임 이후 마크롱은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주피터’로 불릴 정도로 독단적인 리더십을 보였다. 특히 감세정책과 예산축소 정책에서 급진성이 두드러졌다. 복지 규모 축소와 부자 감세에 집중했고, 전체 가구의 80%에 대한 거주세 면세 조치도 공언했다. 임기 초반 마크롱은 거주세 면세 조치를 점진적으로 실시하겠다고 했으나 얼마 안 가서 당장 내년부터 이를 시행하겠다고 말을 뒤집었다.
마크롱은 올해 국방예산을 8억5000만 유로(약 1조 1295억 원)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군에서 이에 반발하자 마크롱은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고 피에르 드빌리에 합참의장은 사표를 던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공군기지로 달려가 TV 앞에서 화합의 이미지를 연출했다.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인 IFOP의 제롬 풀레 연구원은 “마크롱은 지나치게 할리우드식 의사소통을 했고, 이는 국민에게 반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진단했다.
대선에서 당선할 당시, 마크롱의 중도 신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의 의회 의석은 0석이었다. 그러나 대선 뒤 시행한 지난 6월 총선에서 앙마르슈는 압승하며 의회를 장악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높은 실업률 등 산적한 과제들을 새 정부가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국민에게 부여받은 권력으로 퍼스트레이디 법을 추진하려는 등 권한을 오남용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취임한 지 석 달도 안 된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3일 유고브 조사 결과 36%를 기록했다. 한 달 전 같은 조사보다 7%P 하락한 것이다. IFOP는 마크롱의 지지율 하락세는 1995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가장 빠르다고 분석했다. IFOP의 풀레 연구원은 “국민들은 마크롱에 대한 불만이 쌓인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지율 추락은 심각한 수준인 동시에 일종의 경고인 셈”이라며 “마크롱이 보여주는 면면이 국민들을 화나게 했다”고 지적했다.
앙마르슈의 프란시스코 파트리아트 상원의원은 “그는 너무 높은 지지율을 초반에 얻었다”며 “이제야 정상적인 수준으로 내려온 것”이라고 두둔했다. 파트리아트 의원은 “그럼에도 마크롱은 좌-우파 간 장벽을 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