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들은 억울하다. “수익을 내기 위한 정당한 영업활동까지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좀 지나친 것 아닙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다.
금융은 정부 규제 산업이다. 금융이 국가의 혈맥(血脈)인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도를 넘은 관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문재인 정부가 꾸린 새 경제팀은 과거 금융 시장의 불합리, 불평등, 비정상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취임 직후 은행들의 영업 행태를 ‘전당포’에 빗대 강하게 비판했다. 실적 잔치에 샴페인을 들었던 은행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난 세월 은행권에 뿌리내린 보신주의 관행을 생각하면 최 위원장의 엄포가 이해된다. 하지만 민간 은행의 영업 방식까지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최소한의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금융 시스템의 안전성을 높이고, 건전한 금융 질서를 확립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사사건건 간여(干與)하다 보면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가로막아 활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국가 권력의 간섭은 최소화하는 게 경제를 시장에 맡기는 헌법 정신에도 맞다.
은행들이 거둔 올 상반기 실적을 보면 예대마진에 힘입은 이자이익의 쏠림 현상이 여전하다. 은행들도 앞날을 위해서는 이러한 기형적인 수익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은행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하반기 채용 확대 방침을 밝힌 것이 석연치 않다. 갑작스러운 인력 수급 계획 변화는 대규모 해고 사태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경험적인 교훈마저 무색해 보인다.
은행은 인건비 비중이 높은 고비용 구조 산업이다. 지난해 KB국민은행의 경우 인건비(1조7100억 원)가 순이익(9643억 원)보다 많았을 정도이다. 통상 은행들의 한 해 인건비 수준은 당기순이익의 80~90%에 달한다. 영업수익의 3분의 1이 인건비로 빠져나간다.
은행들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그동안 많이 노력해왔다. 갓 들어온 신입사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등 수년간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이 느닷없이 채용을 늘리겠다고 나선 게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8~9년 전 금융권에 ‘폴리뱅커(정치+은행원)’라는 말이 유행했다. 당시 4대 금융지주 수장이 모두 정권과 연줄이 있을 만큼 낙하산 인사가 횡행하던 시절 관치(官治)를 비꼬았던 말이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금융회사 인사에 정부의 입김이 줄었다고는 하나 무엇보다 큰 요인은 금융권의 자정 노력 덕분이다. 지난해 우리은행 이광구 행장의 선임 과정,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BNK금융지주 회장 인선 절차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민간에 맡길 것은 맡겨야 한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들이 올바로 잘해 나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된다.
은행들은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생존법칙이 있다. 수익구조 다변화, 경영 효율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채찍을 들기에 앞서 이들 금융회사의 방식과 결정을 존중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