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월 싱가포르에서 우버 운전기사가 몰던 혼다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베젤(Vezel)’ 계기판에서 별안간 불꽃이 튀더니 차량 내부가 녹아내리고 앞유리에 축구공 크기의 구멍이 생겼다. 다행히 운전기사가 몸을 피해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당시 사고는 우버가 얼마나 방만하고 안전에 무감각한 경영을 펼치는지 다시 상기시켰다.
WSJ는 우버가 리콜 사실을 이미 알고도 혼다의 베젤을 1000대 이상 구입했고, 수리 조치도 없이 운전기사들에게 대여해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트래비스 칼라닉 설립자가 지난 6월 성추행 등 사내 저질 문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관리 부실’이라는 새로운 악재가 터진 것이다.
앞서 혼다는 지난해 4월 베젤의 전자부품이 과열로 차량화재를 유발할 수 있다며 리콜을 발표했다. 그러나 우버 싱가포르 법인 관리자들은 뻔히 이런 사실을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당시 차량화재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WSJ는 당시 사고와 관련해 우버 내부 이메일과 문서를 검토하고 관계자와 인터뷰해 이번에 이를 공론화시킨 것이다.
싱가포르는 지난 2013년 우버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진출한 곳으로, 동남아시아 시장 확대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교통정체 등의 이유로 차량 보유자에게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있어 운전기사를 찾기가 어려웠다. 이에 우버는 지난 2015년 2월 차량리스 업체 라이언시티렌털스(LCR)를 설립하고 우버 운전자들에게 하루 50달러(약 5만6400원)를 받고 대여했다.
우버는 혼다와 도요타 등으로부터 공인받은 딜러망을 통하는 대신 수입업자들로부터 중고차를 매입했다. 이는 차량 점검과 정비 등 안전과 관련한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들 수입업자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부품 부족 등으로 차량을 수리하기가 어렵다고 통보했으나 우버는 리콜 과정을 신속히 하라는 재촉 이메일만 보내고 결함 있는 차량을 계속 대여했다고 WSJ는 밝혔다. 싱가포르 보험업체는 화재 피해와 관련해 우버에 보상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우버가 이미 리콜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차량을 운행하게 했다는 이유에서다.
사고 전 상황과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우버의 대응은 안이했다. 사고 발생 3일 뒤에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우버 임원들이 대응 방안을 보고받았다. 결함 있는 차량 운행을 전면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교체 부품이 올 때까지 문제의 전자기기를 꺼두고 차는 계속 대여하는 것이 대응 방안의 전부였다. 우버 일부 직원들은 안전과 브랜드 이미지 등에서 불필요한 리스크를 피해야 한다며 운행 중단을 주장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담당자는 운행 중단으로 일주일에 약 100만 달러의 비용이 발생한다며 이를 거부했다.
우버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가 일어난 1월 이후 수리 과정에 수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수리가 제대로 됐는지도 불확실하다. 혼다는 우버가 공인되지 않은 판매업자들로부터 매입한 차량에 대해 책임이 없다며 수리를 돕거나 해당 부품의 안전성이 개선됐는지 확인하는 것을 거부했다. 우버도 혼다가 수리 법적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창사 8년 만에 세계 70여 개국에 진출한 우버. 여기에는 현지 상황에 밝은 지역 관리자들에게 최대한 권한을 부여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전략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임에도 그에 걸맞는 경영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다른 다국적 기업이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시스템과 전문 관료 체제를 구축하지 않은 것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버에는 최고재무책임자(CFO)나 최고운영책임자(COO)도 없다. 글로벌 안전 관리 담당 대표는 지난해 회사를 떠났으며 보험 책임자가 그 역할을 겸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