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검찰 인적 쇄신을 통한 ‘검찰 힘 빼기’에 성공해 검찰개혁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비(非)검찰 출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필두로, 검찰 내부서 승진한 문무일 검찰총장이 이른바 검찰 개혁을 향한 ‘삼각편대’로 자리하고 있다. 조 수석이 검찰개혁의 큰 그림을 그리고, 박 장관이 개혁을 주도하며, 문 총장은 검찰 조직 내부를 수습하는 구도다.
이 중 △법무부 탈(脫)검찰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검ㆍ경 수사권 조정 등 제도개혁을 주도할 핵심 인물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으로 압축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던 검찰개혁이어서, 앞으로 법무행정을 이끌며 새 정부의 검찰개혁을 실행해 나가는 막중한 책무에 그의 어깨가 무겁다.
◇박 장관, 검찰개혁 출발은 ‘인적 쇄신’부터 = 박 장관은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는 검찰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인적 쇄신의 칼자루를 그가 쥐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물어 상당수 간부가 좌천됐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정윤회 문건’ 수사를 지휘했던 유상범 광주고검 차장검사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됐다. 검찰총장 직속으로 반부패 수사를 맡았던 김기동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은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이동했다. 검찰개혁이 제도 개혁과 인적 쇄신, 과거사 청산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이번 문책 인사는 당연한 조처로 풀이된다.
박 장관은 취임식에서 맹자의 진심(盡心) 편을 인용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 검찰 개혁 작업을 성실히, 그리고 부단히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물을 아무리 깊게 팠더라도 샘을 만나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둔다면 결국 우물을 전혀 파지 않은 것이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임기 중에 검찰 개혁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주어진 과제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역대 정부에서 개혁을 추진했지만, 사실상 실패를 되풀이한 문제들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장관 한 명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검찰의 무소불위 권한을 분산하기 위한 공수처 설치만 해도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실현이 불가능하다. 야권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아 통과를 마냥 낙관할 수는 없다. 공수처 설치라는 ‘총론’에는 찬성하면서도 누가 일하고 어떤 형태로 운영할지 ‘각론’은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검ㆍ경 수사권 조정은 난도가 더욱 높다. 과거 정부에서처럼 검찰과 경찰이 양보 없이 대립하며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박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 설치가 수사권 조정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사권 조정을 두고 검찰의 반발 강도가 훨씬 세다는 의미다.
반면 법무부 탈검찰화는 박 장관이 권한을 쥐고 풀어갈 수 있는 과제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강도 높은 추진이 가능해 보인다. 앞서 그는 청문회에서 “인권국이나 범죄예방정책국,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등 반드시 검사가 보임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은 전문가 그룹으로 대체해 법무행정이 활발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취임식서 방산비리 척결 외쳐… ‘국정원 댓글ㆍ우병우’ 재조사? = 박 장관은 현재 진행 중인 검찰의 수사와 관련해 “방산 비리는 전투력을 약화시키고 병사들을 위험에 빠뜨리며 전시에는 패배를 자초하는 이적 행위다. 다른 부패와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국가적 범죄”라며 강도 높은 수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 향후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 씨 일가의 은닉재산 환수 조치를 의식한 듯 “부정 형성한 재산을 철저히 환수하는 등 사회의 부정부패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환경과 조건을 청산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박 장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논란이 된 각종 사건의 재조사를 주문받은 터라, 실제로 이행될 경우 큰 파장이 예상된다. 그는 국정원 댓글 사건과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채동욱 전 검찰총장 관련 뒷조사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일 수 있다는 견해를 비쳤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은 물론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검찰 흔들기에 대한 수사까지 번질 수 있는 내용이라 실제로 재수사가 진행되면 큰 파장이 예상된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2012년 대통령 선거기간 중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에 게시글을 남기는 등 방법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은 사건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지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 수사를 벌였지만 검찰 수뇌부와 정면으로 부딪친 끝에 좌천된 바 있다. 이후 윤 지검장은 2013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댓글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해 검찰 수뇌부에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이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혼외자’ 논란이 불거지면서 임명 6개월 만에 사퇴했다. 채 전 총장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국정원 댓글 수사 때 청와대 외압이 있었다”는 폭로를 내놓기도 했다.
박 장관은 또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두고 “철저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재수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검찰에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필요하면 재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장관은… △전남 무안(65) △배재고 △연세대 법학과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법학부 △괴팅겐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연세대 법학과 교수 △대검찰청 검찰제도개혁위원 △연세대 법과대학장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 △학교법인 동덕여학단 이사장 △한국형사법학회 회장 △대법원 형사실무연구회 부회장 △법무부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 위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중앙위원회 의장 △경실련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