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59. 이숙희(李淑禧)

입력 2017-07-2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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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효행을 실천한 조선 사대부집 맏딸

16세기를 살다 간 문신 이문건(李文楗·1494∼1567)에게는 4명의 손주가 있었다. 그중 큰손녀가 이숙희(李淑禧·1547~?)이다. 숙희는 이문건의 아들 온(熅)과 김해 김씨의 1남3녀 중 큰딸로 태어났다. 이들 부부에게는 숙희(淑禧)·숙복(淑福)·숙길(淑吉)·숙녀(淑女) 4명의 아이가 있었다. 숙희는 할아버지의 일기인 ‘묵재일기(默齋日記·1532∼1567)’를 통해 알려졌다. 이문건은 숙희가 출생에서부터 스물한 살까지 그녀의 일상을 기록해 나갔다.

사실 숙희가 인물사전에 등재될 정도의 뛰어난 여성이 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숙희의 출생과 교육, 성장 과정을 통해 성리학이 보편화하는 16세기 양반 사대부 집안 딸들의 성장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유희춘(柳希春·1513∼1577)의 외손녀 은우(恩遇)와 이문건의 친손녀 숙희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숙희는 배움에 대한 집념이 강하고, 자신이 익힌 성리학을 효로 발현한 실천적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약골이어서 천연두·열병·풍열·이질·학질 등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동생 숙복이 병으로 세 살 때 죽은 것을 되돌아보면 숙희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할아버지가 손자 숙길의 교육에만 집중하자 숙희는 할아버지에게 언문 교본과 언문 천자문을 써달라고 요청한다. 이어 숫자·육갑·28수(宿)·효자행실도·소학 등을 익혀나갔다. 나중에 숙희의 공부는 동생 숙길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교육 과정이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요청해서 열심히 익혀 나갔다는 점에 의미가 있었다.

병든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부족한 어머니, 할아버지의 유배지에 따라와 있는 등 상황이 여러 모로 편치 않았다. 그러나 잘나갔던 관직자 할아버지와 집안 좋은 할머니 김돈이 여사가 버텨주었다. 할머니 옆에는 항상 숙희가 붙어 다닐 정도로 이들은 매우 친밀했다. 할머니가 숙희가 유교화하는 과정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효성이 뛰어났던 숙희는 할머니가 편찮으시자 허벅지 살을 베어 태워서 약으로 드리기도 했다. 이문건은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숙희의 효행을 널리 자랑했는데, 이를 통해 당대 유교의 실천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숙희는 15세에 계례(笄禮)를 올리고 같은 해 서울에 사는 감찰 정언규의 아들 정섭(鄭涉)과 혼인했다. 당시는 신랑이 처가에 들어와 살던 때라 숙희의 어려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 반면 사위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15세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된 정섭은 매일 울면서 본가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처할아버지를 졸라댔다. 숙희는 17세에 첫째 딸 희정을 낳고, 20세에 둘째 딸을 낳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둘째 딸을 낳을 때까지 한 번도 시댁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당시는 신랑이 장인 집에 들어와 사는 입장가(入丈家) 시절이라 이런 것들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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