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골프계에서 사고가 제대로 터졌다. 지난해 국내 정규 골프장을 찾은 입장객은 3700만 명을 넘었다. 놀랄 만한 입장객 수이다. 숫자로만 보면 ‘골프 대중화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에서 한국 선수들이 코리아 브랜드를 알리며 승승장구(乘勝長驅)하면서 골프가 친근한 스포츠로 다가선 것도 사실이다.
골프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관계없이 선수들의 승전보(勝戰譜)에 우리는 가슴이 뛰고 여간 기쁘지가 않다. 특히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이 우승하는 모습을 TV채널 앞에서 밤새워 본다. 또한 국산 골프용품도 세계적으로 발돋움하면서 골프산업도 골프 선진국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골프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지배적이다. 스스로 골프를 즐기는 골퍼 마니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골프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얘기이다.
최근 연일 사회면을 장식한 골프 사건은 골프 발전에 찬물을 끼얹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도 남는다. 여러 가지 중 두 가지만 되새김질해 보자.
하나는 경남 창원에서 벌어진 골프연습장 여성 살해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골프장 여신으로 불리는 ‘꽃뱀’보다 한 수 위인 ‘풀뱀’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참하게 살해한 것에 비해서 풀뱀은 그냥 웃어 넘길 일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골프계에 만연돼 있는 데다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아니 우리 주변에서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좋지 않은 일을 갖고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는 것은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골프연습장에서 여성 골퍼를 납치한 뒤 살해하고 유기한 사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남편은 물론 골퍼들에게는 분통 터질 일이다. 골퍼가 피해자이면서도 죄인(?) 최급을 받아야 하기에. 물론 범인이 잡혀 다행이지만, 연습장 업주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또한 범인들의 전직이 캐디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전국의 캐디들에게 씻지 못할 ‘멍에’를 씌웠다. 아마도 이 사건이 잊히기 전까지는 열심히 살아가는 캐디들은 한동안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또 있다. MBC ‘리얼스토리 눈’의 ‘골프장 미녀의 두 얼굴’ 편에 나온 자칭 ‘골프장 여신’이다. 한 남성이 인터넷 채팅으로 만나 3년 동안 교제하던 여자에게 2억1000만 원의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모 씨라는 이 여자 골퍼는 미모와 골프 실력을 밑천(?)으로 ‘미녀골프모임’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미난 사실은 이 씨의 한 지인은 그가 스스로 “풀뱀이라고 하고 내기를 해도 돈을 잃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 또 다른 지인은 “이 씨가 예쁜 아가씨를 데리고 가 골프를 쳐주고 용돈도 받고 했다”고 털어놨다. 골프의 낯 뜨거운 사건이 아닐 없다.
이번 주 13일부터 결코 잊지 못할 대회가 열린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US여자오픈 챔피언십이다. 다름 아닌 박세리(40)가 연장 혈투 끝에 ‘하얀 맨발’의 우승 신화를 이루며 시름에 빠졌던 국민들에게 따듯한 위안과 희망을 안겨준 대회이다. 1998년 일이다.
국민들은 기억한다. 박세리의 발이 참 예뻤다는 것을. 새까맣게 탄 종아리와 대조적이었다. 그 발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에 빠진 우리 국민에게 희망의 상징이 됐던 것이다.
미국 위스콘신주 블랙 울프런 골프클럽에서 열렸던 US여자오픈, 당시 박세리는 21살이었다. 전날 4라운드까지 동갑내기 제니 추아시리폰(미국)과 동타였다. 연장전을 가야 했다. 다음 날 연장전도 최종 18홀까지 동타였다. 18번홀(파4), 박세리가 티샷한 볼은 왼쪽으로 감기면서 워터 해저드 옆 경사면 러프에 걸렸다. 정상적인 자세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박세리는 양말을 벗고 연못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연못 안에서 친 볼은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보기로 막아 추아시리폰과 비겼다. 맨발의 투혼이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겼다.
이렇게 선수와 국민에게 꿈을 심어 주고 있는 코리아 스포츠 브랜드 ‘골프’로 인해 더 이상 ‘사건’이나 ‘풀뱀’으로 상처를 받는 사람이 없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