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가치가 27일(현지시간) 달러당 장중 10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유로·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전일 대비 1.4% 넘게 오른 1.1342달러를 기록해, 10개월래 최고치를 나타냈다. 런던 외환시장에서 유로·달러 가치가 1.13달러대를 돌파한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처음이다. 이날 유로화 급등의 배경에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발언이 있었다.
이날 드라기 총재는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ECB 회의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기 회복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밝혔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그는 “유로존의 경기 회복을 나타내는 조짐이 강해지고 넓어지고 있다”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은 이제 리플레이션 신호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리플레이션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심하지 않은 인플레이션 상태를 말한다. 즉 물가가 하락세에서 벗어나 서서히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최근 유로존 인플레이션 부진에 대해 “일시적”이라고 일축하며 중장기에 ECB의 물가상승률 목표치(2%)에 근접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으며 여러 리스크는 줄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물가 상승 압력이 아직 탄탄하지 못하고 지속적이지 못해 ECB가 부양을 이어가야 한다면서 “우리의 정책은 지속적이어야 하며 만약 경제 조건 개선에 맞춰 정책을 조절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에 대해 시장은 ECB가 사실상 완화정책 조절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유로존은 16개 분기 연속 경제성장을 이어왔으며 이 기간 60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기업과 소비자 신뢰지수도 상승세다. 이에 최근 ECB가 마이너스 금리와 월간 600억 유로 국채 매입 프로그램 같은 부양책에서 언제 후퇴할지 시장이 관심이 쏠렸고 이날 드라기의 확고한 경기 낙관론이 부양책 축소 시사로 해석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실상 드라기가 부양책 행로 변경을 시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ECB가 부양책 축소에 나선다면 사실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테이퍼링(자산매입 규모 축소) 신호를 쏘아 올린 지 4년 만에 ECB가 긴축 행보를 뒤따르게 되는 것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연준은 지난 2013년 처음으로 부양책 축소 신호를 시장에 보낸 후 2015년 12월 10년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마르코 발리 우니크레디트 이코노미스트는 “오늘 드라기 총재는 ECB 통화정책이 2018년 덜 부양적이게 될 것임을 시사하는 첫 단계를 밟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FT는 통화완화 축소 논의는 올여름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