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으로 운영되는 사무장병원이 갈수록 증가해 건강보험료를 갉아먹고 있다. 사무장병원은 의료기관 설립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의료인을 고용하거나 의료법인 등의 명의를 빌려 불법 개설한 의료기관을 말한다.
26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사무장병원으로 인한 건강보험 손실액은 지난 8년간(2009~16년) 1조5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사무장병원으로 적발된 의료기관은 1172곳이다. 특히 지난해 사무장병원 적발 수는 255곳으로 2009년 6곳에서 42배 늘었다.
하지만 정부가 환수한 금액은 10%에도 미지치 못했다. 건강보험공단이 부당이득 환수에 나섰지만, 실제로 되찾은 액수는 1219억6500만 원으로 7.96%에 그쳤다.
현행법에서는 비의료인이 투자한 의료기관은 투자금 회수를 위해 부실·과잉진료, 건강보험 부당 청구 등을 행할 가능성이 높아 의료인, 의료법인 등에게만 의료기관 개설권을 주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한 사무장병원의 꼼수는 날로 진화하고 있다. 20일에는 중국계 한의사를 고용해 병원을 차리고 보험금 13억 원을 타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교통사고 환자 유치를 위해 견인차까지 동원했다. 3월엔 할인 혜택을 내세워 환자 수백 명에게 진료비를 미리 받아 잠적한 치과 사무장이 붙잡혔다.
이에 의료 생태계 혼란을 야기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사무장병원을 근절하기 위해 처벌 강화와 환수 업무를 하는 건보공단 직원 등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행법에서 면허증을 빌려준 의료인이나 의료인이 아니면서 병원을 개설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벌금이 사무장병원에서 벌어들인 이익보다 낮아 적발된 후에 또다시 병원을 개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사무장병원 적발이 의료기관이나 개인의 제보에 의존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후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어 사전 방지에 힘을 써야 한다”며 “사무장병원 적발을 전담하는 특별사법경찰관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사법경찰관제도는 범죄수사나 단속에 특별한 전문성이 요구되거나 일반 사법경찰의 접근성이 낮은 경우, 효율적인 수사가 가능한 자에게 수사권을 부여해 수사·단속의 효율성을 높이는 제도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특별사법경찰관제도 도입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한 관계자는 “특별사법경찰관제도는 권력 남용, 과도한 실적 쌓기 등 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