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의지를 밝히자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잇따라 비정규직 인력의 정규직 전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알고 실질적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동단체들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환영하면서도 차별 없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등 제대로 된 신분 보장을 주장하고 있다.
26일 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으로 적극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공공부문에 이어 민간부문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작업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외부 일정으로 12일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공공기관 관리업무를 맡은 기획재정부는 바로 간접고용 비율이 높은 한국전력공사 등 10개 기관을 소집해 실태조사를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일부 공공기관은 더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농협은 전체 직원의 14.9% 수준인 5245명의 비정규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범농협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했다. 교통안전공단도 ‘일자리 창출 추진단’을 발족하고 22일 첫 정례회의를 열었다. 교통안전공단은 비정규직 20명, 무기계약직 82명 등 100여 명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예금보험공사는 ‘상시·지속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상대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마사회는 ‘상생 일자리 TF’를 신설하고 간접고용 실태조사에 착수했고, 한국동서발전 노사는 일자리위원회 운영을 위한 노사 공동선언을 체결했다.
민간부문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SK그룹 계열의 SK브로드밴드는 23일 이사회에서 자회사를 설립해 하도급 협력업체 직원 5200여 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새 정부가 주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구현한 민간부문의 첫 번째 사례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23일 이사회를 열어 협력사 직원들을 내달 설립하는 자회사에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안건을 처리했다”며 “내년 7월까지 5200여 명의 협력사 직원들을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주류(酒類) 기업인 무학도 기간제 주부 사원 9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롯데그룹 역시 고용 확대와 정규직 전환 작업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5일 직접 참석한 ‘롯데 가족경영·상생경영 및 창조적 노사문화 선포 2주년’ 기념식에서 황각규 경영혁신실장(사장)은 “향후 5년간 7만 명을 신규 채용하고 3년간 단계적으로 비정규직 근로자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민간부문의 정규직 전환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면서 다른 기업으로도 확산할 조짐도 보인다. 다만, 노동 유연성이 담보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무조건적인 정규직 전환은 또 다른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