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대신 실세 차관이 국정 운영을 주도하는 이른바 ‘차관 정치’가 본격화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각 부처 장관 인선에 앞서 다음 주부터 차관 인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 인사는 국무총리 인준에 시간이 걸려 새 정부의 장관 인선이 일러야 다음 달 후반쯤 마무리되는 만큼 장관 공백에 따른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다. 새로 임명된 차관들은 실질적인 부처 운영 권한을 쥐고 국정과제 추진과 공약 이행을 위한 로드맵을 짜고 새 정부의 개혁과제를 실행하는 방식으로 국정의 방향타를 잡아나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8일 “차관 인사는 일괄 세팅해 발표하지 않고 다음 주부터 순차적으로 두 차례 정도 나눠서 단행될 가능성이 크다”며 “새로 임명되는 각 부처의 차관들이 새 정부의 국정 어젠다를 설정하고 세부계획을 짜는 업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말로 예정된 총리의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을 고려하면 장관 임명은 앞으로 한 달 이상 걸릴 가능성이 크다. 또 장관이 내정되더라도 인사청문회 등으로 취임까지 최소 1개월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내각 구성이 완료되기 전까지 다음 주부터 임명되는 차관들이 참여하는 차관회의를 통해 주요 공약의 로드맵을 세우고 정책 과제를 조정·검토하는 작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차관들 간의 협의와 토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부처 간 입장을 조율해 국정과제를 조정하고 공약을 추려내는 실무적인 작업이 가능하다. 현재 관가에서는 공약을 선별하거나 국정과제 세부 실행방안을 마련해도 실질적으로 장차관들이 결정을 내려주지 못해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검찰·재벌개혁 등 핵심 개혁과제를 주도하는 것도 차관들의 몫이 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각종 개혁 관련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데 장관 인선 전까지 새 차관이 이를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날 오후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홍남기 신임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차관회의를 열어 차관 중심 국정운영의 첫발을 뗀다. 다만 아직 새 정부 차관에 대한 인선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이날 회의에는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차관들이 참석하게 된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다음 주 국무회의에서 상정되는 법령·시행령 등의 안건을 논의한다. 특히 홍 국무조정실장은 각 부처를 상대로 새 정부의 국정과제를 구체화하고, 흔들림 없는 공직기강을 확립하도록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운영의 청사진을 마련하고자 부처 업무 내용을 공유하고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계획이다.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이번 회의는 국정과제에 공약을 반영하고 초반에 어떻게 성과를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정책 방향을 잡고자 차관이 중심이 돼 실무를 진행하도록 독려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적으로 초기 국정을 운영하고 국회 인사청문회 없이도 국정과제 추진에 곧바로 착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관에는 실무형 관료 출신들이 임명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개혁드라이브를 걸 필요가 있는 부처는 관료보다는 개혁 성향이 있는 외부 인사를 영입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검찰·재벌개혁을 위해 민정수석에 비검찰 출신의 조국 교수를 임명한 데 이어, 경제 검찰총장인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발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문 대통령은 다음 주 초까지 국가안보실장, 정책실장을 제외한 비서관급 등 청와대 실무진 인선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