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작품을 발표하고 난 다음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아주 오지와 같은 마을인데 소설을 읽고 그곳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그런 사람들을 위한 식당과 카페와 펜션이 생겨나고, 마을과 고갯길이 정식 지명처럼 은비령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곳에 사는 주민들도, 찾아가는 사람들도 소설 속의 이름 그대로 길도 마을도 은비령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그리고 세계에서도 예를 찾아보기 드물게 문학이 길을 만들고 마을을 만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땅의 독자들로부터 남다른 선물과 남다른 빚을 동시에 받은 작가이다. 작가로서의 행운과 의무가 함께 느껴지는 부분이다.
20년 전 이 작품을 쓸 때 나는 우리 인간의 인연과 사랑도 별들의 시간과 같은 우주의 한 질서로 파악하고, 그런 인연과 사랑의 연속성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먼 우주에서 우리 곁으로 찾아오는 혜성과 같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는 뜻으로 혜성이 아니라, 우주의 어떤 질서처럼 미리 정해진 주기를 가지고 우리 운명의 어떤 약속처럼 다가오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별에겐 별의 시간이 있듯이 인간에겐 또 인간의 시간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행성이 자기가 지나간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공전주기를 가지고 있듯 우리 인간의 일도 그런 우주적 질서와 정해진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2500만 년이 될 때마다 다시 원상의 주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2500만 년이 지나면 그때 우리는 다시 지금과 똑같은 모습으로 이곳에 옵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살아오며 겪었던 일들과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을 다시 겪게 되는 겁니다.”
소설 속 우주와 천문에 관한 짧은 지식 모두는 그때 ‘예하’라는 닉네임의 아마추어 천문학자가 해준 말들이었다. 절대 사실일 수 없는 말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꿈을 꾸는 듯했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2500만 년의 시간이 되돌아오는 장소로 ‘은비령’을 썼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느닷없는 슬픔과 이별, 불안과 공포도 그렇게 무섭거나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헤어져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 역시 2500만 년 후 다시 올 것이다.
그때 서른 살 안팎의 청년이었던 그는 마치 우주의 먼 별에 있는 친구와 교신하듯 서로 얼굴도 모른 채 PC통신으로 몇 달 밤을 새워 가며 우주와 별과 천문에 관해 책에서는 알 수 없는 여러 얘기를 해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이 작품으로 받은 어떤 문학상 수상 소감에도 쓰고, 또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 지면에 밝혔다. 그러나 끝내 그를 만나지 못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바란다. 혹여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우리 마음의 은비령에 다녀가듯 꼭 기척하시기 바라는 것이다. 그곳은 이제 나뿐 아니라, 예하에게도 깊은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이제 그때 우리가 보았던 혜성처럼 한 번 떠난 다음 영원히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별을 기다리는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