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왜 타협안 제시했나

입력 2017-04-14 09:38 수정 2017-04-1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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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적 구조조정은 더 큰 불확실성..아무도 모르는 후폭풍 우려 대승적 타협 시도

대우조선해양 사채권자 집회가 사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채무 재조정 협상을 주도 중인 산업은행과 채무조정안에 반대하는 국민연금의 행보에 온 시선이 쏠리고 있다. 추가 감자, 4월 회사채 우선상환 또는 만기 3개월 유예 등 국민연금의 재조정 수정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던 산은은 태도를 바꿔 ‘양보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상황이 기대대로 급반전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과 만나 제시한 ‘회사채 상환용 에스크로 계좌’ 역시 ‘상환 의지’를 보여줄 뿐 사채권자들이 100%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산은이 이런 타협안을 제시한 것은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책임감에서다. 우선 P플랜(회생형 단기 법정관리)의 성패를 누구도 장담할수 없는 상황이다. 구조조정 성공 여부만 놓고 본다면 담보 채권이 많은 산은은 P플랜 하에서도 손해가 사채권자에 비해 크지 않다. 그러나 처음 시도되는 P플랜이 상거래채권 조정에서 난항을 겪고 예상보다 많은 선수금환급보증 반환(RG콜) 요구가 들어올 경우 기존 법정관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예상보다 손실이 확대될 수 있다.

◇P플랜, 모두가 ‘처음 가보는 길’ = 대우조선과 산은이 우려하는 가장 큰 불확실성은 P플랜 역시 시장이 아닌 법리에 따른 구조조정이라는 점이다. P플랜은 채권단이 신규자금지원 계획을 포함한 사전계획안을 제출하고 법원이 이를 인가하면 법원 협의하에 채권단 주도 구조조정으로 전환되는 방식이다. 법원 주도의 구조조정이 회사의 ‘정상화’보다는 채권자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돌려주는 데 맞춰져 있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채권단 간 협의가 난항을 겪을 경우 사실상 법정관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미 구조조정의 칼자루가 기존 산은과 금융당국에서 법원으로 넘긴 형태이기 때문에 주채권자로서 이전처럼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최악의 경우 회사가 정상화되기보다는 채권자 이익을 최대한 실현하는 방향으로 공중 분해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특히 협력사 상거래채권 변제 문제에서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산은 등 채권단 주도로 채무 재조정이 이뤄질 경우 약 2조 원 규모 상거래채권은 100% 변제해 줄 계획이었다. 협력업체에 대금 지급이 제대로 이뤄져야 대우조선 영업이 빠르게 정상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 주도 구조조정으로 들어서면 상거래채권은 변제 우선순위가 가장 나중인 회사채와 같은 수준으로 밀린다. P플랜 하에서 채권단이 사전 협의로 상거래채권만 변제해 준다면 90% 원금 손실을 입을 다른 사채권자들이 크게 반발할 수 있다. 담보권자들이 가져가고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나눠 가져야 하는 ‘제로섬’ 상황에서 ‘대승적 차원’의 상거래채권 우선 변제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려운 것이다.

RG콜 역시 불확실성이 큰 부분이다. 산은은 삼정KPMG 실사 보고서를 토대로 P플랜 시 빌더스 디폴트(선박 건조계약 취소) 우려가 있는 선박을 8척으로 한정했다. 건조 중인 선박은 114척에 이르지만 이 중 계약서상 빌더스 디폴트가 가능한 선박 96척을 추리고 다시 선주사가 취소할 경제적 유인과 건조 공정 등을 따져 나온 숫자다. P플랜이 기대만큼 빠르게 끝나지 않고 장기화 되면 대우조선의 정상화 가능성을 낮게 본 선주사에서 RG콜이 밀려들 수 있다.

◇막판까지 계산기 돌리는 산은·국민연금…대우조선은 어디로 = 구조조정 성공 여부만 놓고 본다면 P플랜이 답일 수는 있다. 삼정KPMG가 자율적 구조조정과 P플랜 상황에서 각 금융기관의 채권 회수율을 계산한 결과 산은과 수은은 P플랜 시 채권 회수율이 각각 66.2%, 53%로 국내은행(20.6%), 회사채·기업어음(10%)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특히 수출입은행은 P플랜 회수율이 자율적 구조조정 시 회수율(43%)보다 10%포인트 높았다. 다른 채권기관이 P플랜으로 갈 경우 적게는 15%포인트(산은)에서 많게는 40%포인트(회사채)까지 회수율이 떨어지는 것과 비교된다. P플랜에서 일부 선주가 선수금환급보증(RG) 반환을 요구하면 건조 중이던 선박이 담보로 잡혀 회수 예상 금액도 늘어나는 것이다. 수은의 RG 규모는 8조7000억 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특히 산은과 수은은 2015년 대우조선 부실화 이후 신규 자금을 투입하면서 대우조선 공장과 비업무용 자산 등을 담보로 잡았다. 2015년 6월 반기보고서와 2016년 12월 사업보고서를 비교하면 산은과 수은의 대우조선해양 담보 설정 규모는 2조 원대에서 5조 원 이상으로 약 3조 원 가까이 늘었다.

이에 대해 정용석 산은 부행장은 “담보를 새로 잡은 건 사실이지만 이는 우발 채무자들이 담보를 마구잡이로 집행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2018년 이후 대우조선 정상화 과정에서 담보를 매각하게 되면 해당 금액을 회사 운영자금으로 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채무 조정 동의와 P플랜에 돌입 상황을 비교해 금전적 손익을 따지는 것은 현 시점에서 무의미하다고 보고 있다. 우선 각각 손실 규모 자체가 충당금 포함 69% 손실과 90% 손실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특히 사전 협의 없이 정부가 사채권자에 일방적인 통보를 한 상황에서는 어떠한 결정도 투자 원칙을 훼손할 수 있어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국민연금이 정부의 대우조선 채무 조정에 동의하면 대형 기관투자자도 은행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정책에 동참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이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독립적 기금 운용 원칙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채무 조정에 최종 동의하지 않을 경우 독립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의 국민연금 태도는 사실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찬반 여부를 떠나 정부 정책에 귀속되지 않는 대립적 구도가 옳은 방향이란 뜻이다.

물론 채무 조정 비동의가 대우조선 파산으로 이어지면 국민연금이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대우조선의 부실화 원인과 관리의 책임이 해당 회사의 최고경영자, 금융당국, 산은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화살의 방향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한 사모펀드 대표는 "결국 각 주체별로 실익을 따지면 P플랜이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장, 지역 경제에 주는 악영향,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외국 선주의 집단 행동 등 때문에 서로 합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국민연금에 정통한 관계자는 “기금운용본부는 정부가 ‘국민연금에 달렸다’는 식의 주장에 대해 불편해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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