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7일과 18일 열리는 대우조선해양 사채권자 집회를 앞두고 산업은행과 금융위원회의 엄포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채권자들이 여전히 채무조정 방안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이들을 달래기는커녕 P플랜(회생형 단기 법정관리)을 적극 거론하며 몰아붙이기만 하는 상황이다. 애초부터 산은과 금융위가 채무조정보다는 P플랜을 염두에 두고 ‘책임 덜기’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23일 대우조선해양 채무조정 방안 발표 후 산은·금융위와 국민연금을 필두로 한 사채권자는 한 치의 양보 없는 평행선을 걸었다. 국민연금은 발표 다음날인 24일부터 자료 불충분을 근거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지금까지 산은에 요구한 사항 중 수용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은 채무 조정방안 발표 다음날인 24일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대우조선 회사채 원리금이 보장된다는 판단으로 분식회계 관련 소송을 하지 않았던 것인데 (채무조정으로 피해를 보게 된 상황에서)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연금은 27일 산업은행에 추가 감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비공식적으로 전달했다.
산은이 제공한 검토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불만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이에 30일 김석균 구조조정1실 실장 등이 전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직접 방문해 연금 관계자들과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산은이 제공한 자료만으로는 대우조선의 정상화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이 유지됐다.
4월 들어서는 산은과 사채권자의 입장 차이가 오히려 더 벌어졌다. 국민연금은 기존의 4월 21일 만기 회사채에 대한 상환 요구를 철회한 뒤 원리금 상환을 3개월 유예할 것을 산은에 제시했지만, 이 역시 조율에 실패했다.
통상 사채권자와 채권단 간의 이견이 있을 때 원리금 상환 유예, 사채권자 집회 연기가 진행되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상황이다. 2013년 STX 구조조정 당시에는 사채권자들이 출자 전환에 이견을 보여 집회가 수차례 연기됐다.
이에 대해 산은은 “4월 21일 4400억 원 회사채 만기 상환과 별도로 추가 선박 건조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추가 지원이 없으면 4월 말~5월 초 부도위기에 직면한다”며 상환 유예를 거절했다. 사채권자들은 산은과 금융당국이 되레 관리 부실의 책임을 회사채 투자자에게 전가하는 행태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산은·수출입은행과 국민연금의 여론전은 지난 12일 또 한 번 크게 불거졌다.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는 이미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기 이전부터 지급불능인 상태”라며 “(채무 재조정을 통해) 대우조선이 정상화돼야 사채권자들이 50%의 돈이라도 받게 되므로 국민연금의 인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최 행장의 발언은 역설적으로 대우조선의 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지 인정한 것”이라며 “선박 건조시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의 RG(선수금환급보증)부터 해소되면서 6년 만기 회사채에 대한 만기상환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50% 지급도 단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산은이 구조조정 발표 전 사전 협의를 진행한 적이 없고 이후에도 협상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꼬집었다.
반면 산은 내부에서는 “국민연금이 만나주지도 않는다”고 볼멘소리가 나오는 등 양측 입장이 계속 엇갈리는 상황이다. 어느 쪽이든 의도적으로 여론을 이끌어 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금융위도 이달 초부터 P플랜을 강조하는 상황이다. 임종룡 위원장은 13일 은행장 간담회에서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 과정에 모든 이해관계자가 엄정하게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는 기존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존에 발표한 안을 수정, 제시하기보다는 P플랜에 무게를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사채권자 고위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올해 4월 12일 회사채 상환을 못할 것이란 소문은 지난해 말부터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 정책의 실패를 최대한 덮기 위해 3월 말이 돼서야 추가 지원안을 발표한 것이란 의심이 든다. 짧은 기간에 분석하기 어려운 제안을 한 뒤 책임의 일부를 사채권자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은 관계자는 “지금 이 시기에 진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기에 바로 채무 조정방침을 낸 것일 뿐”이라며 “사채권자들의 만기 유예 요구는 형평성이나 합리성 모두에 어긋난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