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사이클’에 접어든 반도체 업계가 과거 출혈 경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치킨게임으로 인해 줄도산한 흑역사를 재현하지 않기 위해 물량 공세보다는 기술력 있는 제품 개발에 힘을 싣고 있는 것이다.
11일 반도체 시장조사기관인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 세계 D램 매출 규모는 전 분기보다 18.2% 증가한 124억5400만 달러(약 14조1849억 원)를 기록했다.
반도체 업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인해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승세는 올해를 기점으로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한 85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향후에도 2021년까지 연평균 7.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반도체 시장 성장률 역시 2.4%에 달한다.
이 같은 반도체의 시장의 호황은 PC와 모바일 기기, 서버 등의 수요가 증가한 데다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 기술에 탑재되는 반도체 사용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는 이 같은 슈퍼 사이클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서는 치킨게임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설비 증설 등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물리적으로도 수요를 맞추기 어려울 뿐더러 과거에 치른 무분별한 물량 경쟁을 재현하면 줄도산이라는 악몽이 반복될 수 있어서다.
반도체 업계는 2008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일본 엘피다와 미국 마이크론, 독일 인피니온, 대만 이노테라 등이 치킨게임을 벌였다. D램의 공급 과잉으로 가격 하락이 시작되자 제값도 못 받고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2008년 3분기 영업이익률은 0%가 됐으며, 하이닉스는 -28%, 마이크론 -35%, 이노테라는 -39%를 각각 기록했다. 결국 2009년 독일 반도체회사 키몬다, 일본 최대 메모리 기업 엘피다 등이 파산한 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도시바, 샌디스크 등 5~6개의 대형 기업만 살아 남았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무분별한 물량 경쟁으로 가격이 낮춰질 대로 낮아지면서 다수 업체가 퇴출된 경험이 교훈이 됐다”면서 “학습효과가 있는 만큼 수요에 맞춰 공급을 크게 늘린다거나 가격을 싸게 후려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