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회사채 이자를 1300%나 줘야 살 사람이 나온다는 얘기는 사실상 살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시장은 정부를 믿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오죽하면 친(親)정부 성향의 국민연금이 반발하겠는가.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회사채 최대 투자자이니 그럴 자격이 있다.
국민연금이 반발하자 혼란은 확산되고 있다. 연기금,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 회사채 투자자들도 모두 정부의 채무조정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도와 주기로 약속했던 시중은행(채권자)마저 확약을 미루고 있다. 정부 성토장(聲討場)이 된 것이다.
심지어 정부 내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대우조선 파산 시 피해액을 최대 59조 원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17조 원이라고 주장했다. 부처의 성격이 다르니 입장이 다를 수는 있지만, 이 정도 차이라면 그건 ‘불협화음’이다.
도대체 왜 이런 난장판이 벌어졌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부가 시장에 확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장이 원했던 건 이런 채무조정안이 아니었다. 대우조선을 살리든, 죽이든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원안을 잘 살펴보면 비판 여론을 피하고, ‘정부 식구’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약간의 비루함까지 느껴진다.
정부는 대우조선에 신규 자금 2조9000억 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정밀한 분석하에 자금 규모를 추정하다 보니 이런 숫자가 나왔겠지만, 앞자리 숫자를 ‘3’이 아닌 ‘2’로 고정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마치 홈쇼핑에서 1000원짜리 상품을 꼭 999원이라며 더 싸게 보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총지원 금액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신규 자금은 금액으로 명시했지만, 출자 전환과 채무 유예 규모는 ‘비율’로 표시했다. 자신들이 불리한 것은 유동적으로 표시하는 정부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지원안 발표 후 언론의 헤드라인이 2조9000억 원, 5조8000억 원, 6조7000억 원 등 다양하게 나왔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예컨대 채무조정 대상에 RG(선수금환급보증) 채권을 포함하지 않은 것도 사채권자들의 반발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대우조선 정상화 시 RG채권을 잔뜩 들고 있는 산은과 수은부터 손실이 회복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련하게 비판 여론을 피하고 싶었겠지만, 이런 꼼수는 자신감 결여로 비칠 수 있다. 공정성 논란은 신뢰를 떨어뜨린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와 같은 금융시장에서 정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는 치명적인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좋든 싫든 대우조선에 대한 최종 해법은 새 정부의 몫이 됐다. 현 정부는 이미 조정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새 대책은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우조선을 반드시 살리겠다는 의지를 정직한 숫자로 보여 줘야 한다. 신규 자금은 ‘한도 대여(크레디트 라인)’ 방식으로 투입된다. 한도만 정하고 그 안에서 투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한도가 크다고 반드시 돈이 더 많이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조성된 채권시장안정기금은 한도가 10조 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투입된 금액은 1조 원도 되지 않는다. 시장 불안 심리를 효율적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무너진 컨트롤타워도 복원해야 한다. 산업과 금융 차원에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구조조정을 이끌 조직이 있어야 한다. 사실 금융위 내에서는 조선업 업황 악화를 이유로 대우조선 지원에 신중론을 제기했던 관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금융 정책 위주의 시각하에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핵심 라인에서 모두 배제됐다. 이런 조직 풍토에서 나오는 정책은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