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는 29일(현지시간) 미국 법원에 연방 파산법 11조 적용을 공식 신청했다. 쓰나가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도시바의 경영 위기 주범인 해외 원자력 사업 리스크를 차단하고자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파산법 11조는 기업의 파산보호 절차로 우리나라의 법정관리에 해당한다. 파산보호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도시바는 미국 원전 사업에서 손을 뗄 수 있게 되며 WH는 잠시 채무이행의무에서 벗어나 자산매각 등을 통해 경영 정상화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사실상 131년 전통의 회사가 해체 수순에 돌입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뉴욕타임스(NYT)는 WH의 파산보호로 글로벌 원자력 업계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됐다고 평가했다. WH는 세계 원전의 절반 이상을 설계했을 정도로 오랜 전통과 막강한 기술력으로 손꼽히는 기업이다. 한국 첫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 건설도 WH의 기술 전수로 시작됐다.
WH는 1886년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세웠다. 웨스팅하우스 자신이 만든 교류전기 시스템을 판매하기 위해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컴퍼니를 세운 게 역사의 시작이었다. 웨스팅하우스는 발명왕 에디슨과 경쟁하며 19세기 미국 산업혁명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디슨이 미는 ‘직류’와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전류전쟁’에서 테슬라 편에 섰던 것이 바로 WH였다. 에디슨은 WH가 채택한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이 6개월 내로 고객들을 죽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해당 기술은 결국 업계 표준이 됐고 WH는 1893년 에디슨을 제치고 ‘시카고 만국박람회’ 전기시설 독점권을 따내 50만 개의 전구로 박람회를 밝혔다. WH는 1895년에도 에디슨을 따돌리고 나이아가라 수력발전소 프로젝트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이밖에 WH는 전기 스토브 등 가전제품 개발에서부터 미국 CBS 방송사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나갔다. 1957년 미국 최초 원전을 세운 것도 WH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WH도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업체들의 약진으로 가전사업에서 경쟁력을 잃은 상황에서 원천 기술을 자랑했던 원자력 사업부문에서는 우라늄 가격 상승과 1979년 드리마일 섬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사고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 사고를 계기로 미국에서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1978년부터 무려 34년간 중단됐다. 새 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다양한 분야의 기업을 사고 팔았지만 오히려 경영의 혼선만 가중되는 꼴이 됐다. 결국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WH는 1999년 원전 부문을 영국 핵연료업체 BNFL에 매각했다. 이후 2006년 일본 도시바가 GE와의 입찰 경쟁에서 이겨 WH는 도시바의 손에 들어가게 됐다. 도시바는 예상 매각가격 17억 달러의 3배에 달하는 54억 달러(약 6조 원)를 써냈는데, 이는 WH 연간 영업이익의 37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당시 업계에서는 WH는 3배 웃돈을 주고 사도 아깝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전망이 밝았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전 건설을 위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가운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사고 여파로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대지진 여파로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 6기 중 3기에서 멜트다운이 발생했는데 이중 2기가 도시바가 만든 것이었다.
WH는 현재 신기술인 AP1000 설계를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에서 총 8기의 원자로를 건설 중이지만 공사 기간 지연과 비용 증가로 벼랑 끝에 몰리게 됐다. 특히 지난 2015년 말 인수했던 원전 건설업체 스톤앤드웹스터(S&W)가 막대한 적자를 내면서 WH는 모회사인 도시바까지 위기에 빠뜨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시바에 직격탄을 날린 2015년 회계부정스캔들도 WH와 연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WH의 실적 악화로 도시바 그룹 전체 실적 목표 압박이 커진 게 1500억 엔이 넘는 분식회계로 이어졌다고 FT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