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사태, 원인은 지배구조에 있다

입력 2017-03-2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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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위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부 매각 입찰 마감(29일)을 앞두고 인수 후보 기업 간 막판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파산 위기에 내몰린 도시바는 14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일본 전자업계의 간판이자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1890년대 일본의 백열등 시대를 연 것도 1985년 세계 최초로 노트북 컴퓨터를 선보인 것도 도시바였다.

무엇이 도시바를 벼랑 끝 위기로 내몰았을까.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시바에 깊이 박힌 오만한 사내 문화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크고 작은 위기가 터질 때마다 회사 내부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나머지 외부에 도움을 청하지 않고 자력으로 해결하려다 문제를 키웠다는 이야기다.

도시바의 운명에 직격탄을 날린 건 2015년 드러난 회계부정사건이었다. 2015년 도시바 경영진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1500억 엔이 넘는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적발됐다. 이는 도시바가 2009∼2013 회계연도에 기록한 연결 영업이익(총 1조491억 엔)의 10%를 넘는 규모였다. 도시바의 회계부정사건으로 일본 열도는 발칵 뒤집어졌다. 국민적 신망이 두터웠던 기업이었으나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 찍히며 기업 이미지가 실추됐다. 이 사건으로 도시바의 전·현직 사장 3명이 모두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대형 스캔들에도 도시바는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대신 지난해 6월 전형적인 ‘도시바 맨’이자 웨스팅하우스 수장이었던 시가 시게노리를 회장직에 앉혔다. 시가 회장은 지난달 사임했다. 자신이 지난 2010년부터 4년간 몸담았던 웨스팅하우스에서 천문학적인 손실이 발생, 도시바 전체가 흔들리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006년 도시바가 54억 달러에 인수한 미국 원자력 자회사로 도시바 사태의 원흉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도시바는 웨스팅하우스에 대해 파산보호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도시바 사태에서 원자력 사업부문 손실보다 더 큰 문제는 도시바가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실패나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고 지적한다. 즉 분식회계 사태나 원자력 손실 등 오늘날 도시바 사태에 원인이 된 문제는 기업 지배구조와 사내 문화에서 비롯됐으나 기업 구성원들이 이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 건설팅회사 글래스루이스의 우에노 나오코 디렉터는 “도시바 내부 사람들은 도시바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크다”면서 “도시바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이렇게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외부에 도시바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문제를 숨기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글래스루이스는 지난해 시가 회장 임명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시바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구조 개선은 정작 2015년 회계부정사건을 막지 못했다. 일부 일본 언론은 도시바의 회계부정 배경에 대해 실적 부진에 따른 성과 압박을 꼬집기도 했다. 당시 도시바 회계부정을 조사했던 제3자위원회(외부 인사로 구성)는 “상사의 뜻에 거역할 수 없는 기업 풍토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도시바는 회계부정 스캔들로 경영난에 몰리자 또 한 번 대대적인 경영구조 쇄신에 나섰다. 당시 16명이었던 이사회를 10명으로 줄이고 사외이사도 기존 4명에서 6명으로 비중을 늘렸다.

하지만 회계부정 스캔들 이후 도시바 이사회의 리더십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웨스팅하우스가 막대한 손실을 발생하기 전 이사진이 웨스팅하우스의 사업을 면밀하게 검토했는지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도시바 임원진 출신은 FT에 “도시바 경영진 중 실제로 웨스팅하우스에 제동을 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즉 경영진 중 “노(No)”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단 이야기다.

도시바는 AP-1000원자로 설계를 바탕으로 한 원자력 발전소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그러나 건설 일정이 3년이나 지체된데다 당초 계획한 예산보다 100억 달러가 초과됐다. 특히 2015년 도시바 이사회가 승인한 미국 원자력발전소 건설회사 스톤앤웹스터 인수도 사업성에 근거한 판단이 아닌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유틸리티 업체와의 법적 분쟁을 끝내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됐다고 FT는 지적했다. 해당 업체의 인수는 미국 원자력 자회사의 63억 달러 상각 처리의 원인 중 하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도시바가 이미 원전 대규모 손실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란 견해도 나온다. 변호사인 고하라 노부오 씨는 “도시바가 웨스팅하우스 (손실이) 폭발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회계 부정 스캔들 이후에도 시가 회장을 이사회에 남겨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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