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유럽연합(EU)의 이혼 협상 개시가 초 읽기에 들어갔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리스본 조약 제50조를 발동해 EU와 정식 탈퇴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1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영국 의회는 이날 온갖 우여곡절 끝에 메이 총리에게 언제라도 EU 이탈을 통보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브렉시트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원은 지난달 초 브렉시트 발동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상원은 영국 내 EU 시민권자의 거주권한을 즉각 보장하고 브렉시트 최종 조건에 대해 의회에 거부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수정안을 제시했으나 이날 하원이 이를 부결시켰다. 또 상원은 표결로 EU 탈퇴를 늦추는 것이 득이 될 것이 없다고 인식해 하원에서 통과된 원안을 받아들였다.
해당 법안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의를 거쳐 14일 하원이 제시안 원안대로 통과된다. 즉 메이 총리는 14일부터 리스본 조약 제50조 발동을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부 장관은 “우리는 지금 영국의 한 세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협상의 문 앞에 있다”고 강조했다.
메이 총리는 14일 의회에서 지난 9~1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내용을 보고한다. 일각에서는 이 자리에서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를 통보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그러나 영국 정부 관리들은 이달 말에야 메이 총리고 리스본 조약 제50조를 발동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데이비스 장관은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이달 말 EU 탈퇴를 통보할 것”이라며 “영국 전체에 이익이 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총선이 15일 치러지고 25일에는 로마조약 60주년 EU 정상회의도 열리는 등 EU 측에서 중요한 일정이 많아 이달 마지막 주 통보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인식에서 이렇게 시기를 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지난 수년간 영국과 EU,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브렉시트는 정식 이혼 절차 돌입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영국은 여기까지 오기에도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영국 내에서는 예전부터 EU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섬나라인 영국은 유럽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견제와 균형을 맞추는 것에 초점을 맞춰왔다. 아울러 난민위기와 이민자 유입으로 자국 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저소득층의 우려 속에 난민을 제한하려는 영국 정부에 제동을 거는 EU에 대한 불만이 쌓여왔다. 여기에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의 계산착오가 있다. 캐머런은 2013년에 2년 뒤 치러질 총선 공약으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제시했다. 보수당 내 EU 탈퇴 강경파를 달래면서 총선에서 승리하고 나서는 EU와 협상을 벌여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 반대를 이끌어 내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23일 치러진 국민투표 결과 브렉시트 찬성이 51.9%로, 반대 48.1%를 누르면서 영국은 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로 빠져들게 됐다.
투표 결과에 캐머런이 사임하고 지난해 7월 당시 내무장관인 메이가 26년 만에 첫 여성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메이는 지난 1월 이민 통제를 골자로 EU에서 완전히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선언했다. 영국 대법원은 같은 달 브렉시트를 개시하려면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총리 측이 부랴부랴 브렉시트 법안을 준비했으며 집권 여당 보수당이 장악한 하원과 상원이 해당 법안을 놓고 ‘핑퐁 게임’을 벌이다 이날에 이르러서야 통과됐다. 상원은 임명직이며 보수당은 전체 의석 804석 가운데 252석 만을 확보한 상태여서 여당의 힘이 약하다.
EU는 이미 영국의 브렉시트 통보를 준비한 상태다. EU 지도자들은 이미 이달 중순 리스본 조약 제50조가 발동되면 다음 달 6일 긴급 정상회의를 열어 이를 논의하기로 합의하는 등 영국의 움직임에 즉각 대응할 태세를 갖췄다고 FT는 전했다.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인 도날드 투스크는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영국의 브렉시트 통보에 48시간 이내에 반응할 것”이라며 “전 절차를 잘 준비해 놓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