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총수 부재 사태’를 겪고 있는 삼성이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의 합심’으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 신인도와 브랜드 가치가 추락하는 모습도 역력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에 따른 심각한 후유증은 불가피해 보인다.
20일 미국 여론조사기관 해리스폴(Harris Poll)은 3년 연속 10위 안에 들었던 삼성전자의 미국 내 기업 평판 순위가 49위로 추락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작년까지 소폭의 오르내림은 있었지만, 2015년 3위를 기록하는 등 줄곧 10위권 안팎을 유지했다.
이 같은 성적표는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가 직접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지만, 조사 시점이 지난해 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특검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 수사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은 브랜드 가치 추락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이렇다 할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인 형국이다. 특히 포승줄에 묶인 채 특검에 소환되는 이 부회장의 사진이 전 세계로 타전된 것은 앞으로 삼성의 브랜드 가치 추락에 직접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대외 이미지 추락은 글로벌 사업에 상당한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이 부회장의 구속을 빌미로 미국 사법당국이 삼성전자를 외국 부패 기업에 강력한 벌칙을 가하는 해외부패방지법(FCPA) 적용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그 대상으로 지정되면 수백만 달러의 벌금뿐 아니라, 미국 내 공공사업 입찰 금지 등의 제재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삼성의 60개 계열사 사장단은 총수 부재 사태에 따른 직원들의 동요를 막고,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사내 게시판에 임직원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에는 “그룹이 맞이한 초유의 사태로 충격과 상심이 클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회사를 믿고 각자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삼성그룹 60개 계열사 사장들이 공동 명의로 그룹 현안을 논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 자동차 전자장치 전문기업 하만 인수와 스마트폰 ‘갤럭시S8’ 출시 계획 등 당면 과제에서는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전열을 재정비하겠다는 분석으로 풀이된다. 오너십 부재로 투자와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악영향을 입을 것은 피할 수 없겠지만, 신제품 출시와 같은 당면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사적 다짐으로 풀이된다.
여기에는 다음 달 중순으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 대한 우려도 한몫하고 있다. 삼성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 부회장 구속을 놓고 배당 확대와 지배구조 개편 요구가 거세게 일 것으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또 이 부회장이 곧 기소될 예정인 만큼 판사 출신 변호사들을 대거 보강하는 등 ‘무죄 입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제품 구매 시 회사 이미지는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다”면서 “만일 이 부회장에게 뇌물죄가 확정될 경우, 해외 소비자들의 삼성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 추락은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