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재벌 개혁 강도는 세질 것인 만큼, 새로운 지배구조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5일 새로운 지배구조 형태로의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탄핵 정국과 맞물린 조기대선이란 굵직한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연일 ‘대기업 배싱(bashing·때리기)’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어서 재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됐다.
‘지배구조 개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재계는 최순실 게이트 후폭풍에 깊은 시름을 겪고 있다.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복잡하게 얽힌 순환출자를 해소하며 경영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지만, 팽배해진 반기업 정서를 등에 업고 기업을 옥죄는 경제민주화 법안이 걸림돌이 되며 결국 갈지자 행보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상법·중간금융지주회사… 지주사 전환 막는 법안 속출 = 최 회장은 이날 “새로운 지배구조를 강구하고 있다”면서 “지분 관계가 전혀 없으면서도 SK 브랜드를 사용하는 느슨한 연대 형태의 지배구조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03년 ‘소버린 사태’ 이후 계열사별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을 강화하고 있는 지배구조에 변화를 주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탈(脫) 총수 중심의 지배구조’에 변화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미다.
이처럼 지난해 11월 삼성그룹의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가 지배구조 개편을 공식화하면서, 현대차·SK·롯데·한화그룹 등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 움직임이 분주한 모습이다. 지주회사 체제는 오너의 지배력 강화는 물론 책임·투명성 제고, 신성장동력 발굴 등 다양한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사 보유 금지, 복잡하게 얽힌 순환출자로 전환 작업은 정체된 상태다.
급기야 삼성의 지배구조를 결정할 ‘중간금융지주법’이 뇌물 혐의라는 그물에 걸려들면서 같은 문제로 지배구조 개편의 애로를 겪고 있는 현대차, 롯데, 한화 등도 비상이 걸렸다. 재계는 지주회사 전환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지분 승계 작업의 최종 마무리 단계로 분석하고 있다.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 지분을 정리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현대차와 롯데도 현대카드와 롯데카드를 중심으로 한 금융계열사 지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한화는 순환출자가 없어 상대적으로 체제 전환이 급하지 않지만, 지분 승계를 위해 지주회사의 필요성이 상존하고 있다. 한화생명 등 금융계열사를 다수 보유한 만큼, 중간금융지주사 제도 도입 시 체제 전환에 적극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현행법상 지주회사는 금융계열사를 보유할 수 없지만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되면 가능해진다.
◇또 도마에 오른 금산분리 논란… ‘이율배반’ 비판 목소리 = 재계는 과거 순환출자를 해소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정치권이 도리어 지주회사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며 ‘이율배반’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기업이 인적분할을 단행할 때 자사주 분할 신주를 배정하면 의결권을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지주사 전환시 자사주 분할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상법개정안이 상정된 상황이다. 또 자사주 분할 신주를 배정하면 법인세를 부과해버리는 법인세법 개정안도 있다. 기업 입장에선 2중·3중의 족쇄에 걸린 모양새다. 기업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중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 문제는 가장 큰 아킬레스건 중 하나다. 재계는 중간지주회사 도입이 불발될 경우, 현재의 기업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뒤흔들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시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대기업 계열 보험과 카드 등 국내 금융회사들이 외국 자본에 넘기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쟤계 관계자는 “일반지주회사가 금융회사를 보유하도록 허용하되 금융 부문의 규모가 클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의무화해 금산분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국회가 제동을 걸고 있다”면서 “대부문 금융회사들은 상장돼 있기 때문에 지분을 넘기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고 시장에도 큰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