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1920.4.15~2015.1.31)는 통독 이전인 1984년부터 통독 이후인 1994년까지 재임한 통일 독일의 초대 대통령이다. 그는 ‘독일의 양심’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198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식에서 “독일인은 누구든, 죄가 있든 없든 독일이 저지른 과거의 부끄러운 일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며 “그것이 나치로부터 고통 받은 많은 사람들과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독일인의 각성을 촉구했다.
“과거에 대해 눈 감은 자는 현재도 보지 못한다”는 그의 발언은 전쟁 책임을 소수 나치에 돌리고 일반 국민의 책임을 부정하던 독일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이후 독일이 과거사를 대하는 기준이 된다.
그는 1990년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와 협력해 베를린 장벽을 허무는 데 성공한다. 분단 체제를 유지하려는 동독 사회주의통일당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서독 기득권층도 통일을 원치 않았다. 동독 재건을 위한 천문학적 세금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인접국들도 다시 통일된 뒤 예상되는 위협과 정치적 파장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런 장벽을 허물고 그는 통일을 이뤄낸다. 교류협력 확대, 법제도 정비, 통일기금 조성 등 통일을 위한 준비를 하나씩 진행했다. 또 진정으로 하나가 되려면 나눔을 실천하는 성숙한 정치문화와 시민의식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해 노력한다. 그는 2+4 회담을 통해 러시아·미국·영국·프랑스와의 외교관계도 성공적으로 관리해 주변국들과 쟁점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했다.
친한파 정치인으로 알려진 그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40년 지기였다.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독일 정치인·지식인들과 함께 ‘김대중 구명운동’에 나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