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1월 25일 가네코 후미코-조선 청년을 사랑했던 일본의 무정부주의자

입력 2017-01-2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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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명 편집부 차장

1926년 일본 법정에서 ‘다이쇼(大正) 일본 왕과 히로히토(裕仁) 왕세자 암살을 꾀한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한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이 있었다. 독립운동가 박열(1902.2.3~1974.1.17)과, 조선의 독립을 간절히 바랐던 연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25~1926.7.23)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생했지만 무적자로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던 가네코는 친할머니, 고모와 함께 충북에서 살던 중 일본 헌병의 총칼 앞에서도 만세를 부르며 죽어가는 조선인들을 보며 조선의 독립 의지를 확인하고 동감했다. 이는 후에 그녀가 무정부주의자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

가네코는 1919년 일본으로 돌아갔으나 어머니가 술집에 팔아넘기려 하자 혼자 도쿄 친척집으로 갔고, 사회주의자들과 만나 교류하며 아나키스트가 됐다. 이때 만난 박열과 동거를 시작했으며 1923년 아나키즘 단체인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했다. 그해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보호 검속 명목으로 연행됐다.

사형 판결을 받은 그녀는 일본 내에서 시신을 거둬 줄 사람이 없어 박열과 옥중 결혼식을 올렸지만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된 며칠 뒤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가네코는 박열의 집안에서 유골을 인수해 경북 문경에 안장함에 따라 현재 박열의사기념관 옆에 묻혀 있다.

사랑하는 여인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던 박열은 해방과 함께 미군에 의해 22년 2개월의 옥살이 끝에 아키다 감옥에서 풀려났다. 이후 일본 우익교포 단체인 재일조선인거류민단을 조직해 단장을 맡기도 한 그는 1949년 고국 땅을 밟았다가 6·25 때 납북돼 북한에서 눈을 감았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은 출연진을 정하고 이달 본격 촬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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