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로 ‘시계(視界) 제로’에 빠진 재계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책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오너가(家) 중심의 인사 재편으로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이를 통해 최근 대내외적으로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악재들이 사업적 리스크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최순실 게이트 이후 최대의 악재로 불확실성에 직면하자, 오너가 중심의 인사 재편에 집중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런 변화를 지난해 롯데그룹의 형제 간 경영권 분쟁과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최순실 국정농단이 연계되면서 잡음이 일었던 것을 교훈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 7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부사장 겸 대표이사가 대한항공 사장으로 승진했다.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도 전무B에서 전무A로 한 계단 승진했다. 본격적인 3세 경영 참여가 본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앞서 효성그룹도 조석래 회장이 물러나고 장남 조현준 사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동아쏘시오그룹도 ‘박카스 신화’를 쓰며 35년간 그룹을 이끈 강신호 회장이 지난 2일 경영에서 물러나고 강정석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신세계그룹도 정기인사를 통해 오너 2세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지난해 부회장으로 승진한 김해성 이마트 공동 대표이사가 퇴임하면서 정용진 부회장이 그룹 내 유일한 부회장이 됐다. 김 부회장은 오너 일가를 제외하면 구학서 고문(전 회장) 이후 9년 만에 부회장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4일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이마트ㆍ정용진, 백화점ㆍ정유경’이라는 신세계그룹의 후계 구도를 공식 인정했다.
그는 “동생(정유경 사장)도 맡은 분야, 잘하는 분야에서 책임을 갖고 해보라는 이명희 회장의 지시가 있었다”며 “동생이 그 부분(백화점 사업)을 맡아서 해주면 스타필드, 이마트 등 다른 계열사를 내가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와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장남 정기선 전무 등도 경영권 승계 작업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또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장남이자 창업 4세인 장선익 과장도 연말 인사를 통해 임원(이사)직에 올랐다. 장 이사는 신설되는 비전팀 팀장을 맡아 회사의 미래전략을 그리는 중책을 맡았다.
재계 관계자는 “노출된 악재는 대응이 가능하지만 불확실성은 최악의 시장 환경으로, 이런 상황에서 기업마다 경영권 승계에 집중하는 것은 경영 컨트롤타워를 확고히 해 미래비전 제시 및 책임 있는 신속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작동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