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러분과 역사를 만들겠다.” 2007년 1월 9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 월드 엑스포’ 기조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는 초대 ‘아이폰’을 발표하며 이같이 약속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약속은 현실이 됐다. 손 바닥만한 크기의 단말기에 PC와 음향, 카메라, 캠코더, 네비게이션, 게임, 결제 등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걸 애플은 구현해냈다. 그 사이, 개개의 산업은 스마트폰에 밀려 사양길로 내몰렸다.
아이폰은 한때 심각한 경영 위기에 내몰렸던 애플을 명실공히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올려놓으며 전 산업 역사에 길이 남을 위업이 된 것이다. 스마트폰 단말기 산업은 이미 포화상태로 성장 여력이 한계에 이르렀지만 배차 공유 서비스 등 새로운 생태계의 정점에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독일 시장조사업체 스테이티스터에 따르면 2016년 스마트폰 단말기 시장은 4200억 달러(약 502조 원), 앱 시장은 880억 달러(약 105조 원)으로 각각 성장했다. 모바일 광고시장도 800억 달러 규모가 넘는다. 배차 공유 서비스 등 통계로 파악할 수 없는 분야까지 포함하면 스마트폰 경제 규모는 더 넓어진다.
애플이 오늘날의 성공을 거두기까지 승승장구한 것 만은 아니다. 경영진과 대립하던 잡스는 창업자였음에도 불구하고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났다. 고성능 컴퓨터 개발사인 넥스트를 설립했지만,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애플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1990년대엔 몰락 직전까지 내몰렸다.
잡스가 CEO로 애플에 복귀한 건 1997년. 그는 애플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당대 숙적인 마이크로소프트(MS)와도 손을 잡았다. 이후 2001년 선보인 ‘아이팟’은 잡스의 첫 번째 반격이었다. 아이팟은 단순한 디자인과 조작성으로 전 세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2003년에는 음악 서비스도 시작했다. 저렴한 가격에 세련된 디자인까지 갖춘 아이팟은 단순한 음악 플레이어를 넘어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잡스는 2001년 또 다른 포석을 쳤다. 직영 매장 애플스토어를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매장 없이 PC를 판매하는 델이 대세가 된 가운데, 무모한 시도라는 편견도 있었지만 잡스는 주위의 우려를 보기좋게 깼다. 애플스토어는 고객과 애플 제품을 친밀하게 연결해주는 귀중한 루트로 성장했다. “잡스는 기술자로서는 몰라도 소프트웨어, 기계, 예술, 디자인 등 폭 넓은 지식을 가진 희귀한 존재였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데 천재적이었다.”는 평가도 이래서 나온다.
잡스의 독특한 경영 모델 덕분에 애플은 2011년 8월 미국 정유 메이저인 엑손모빌을 제치고 시가 총액 1위에 오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2개월 후 잡스는 세상을 떠났다.
잡스가 떠난 후에도 애플은 고성장세를 유지했다. 대화면을 채용한 아이폰6 시리즈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주가도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갔다. 쿡은 5년 간 매출을 50% 늘리고 주가도 2배로 끌어 올렸다. 잡스가 싫어했던 아이폰 화면 크기를 키워 수요를 다시 불러일으켰고, 손목시계형 스마트 기기인 애플워치도 내놨다.
그러나 잡스의 마법이 사라진 것일까. 애플에서 혁신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6 회계연도 3분기에 애플은 매출과 순이익이 모두 15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스마트폰의 존재를 위협하는 인공지능(AI) 서비스가 차세대 유망주로 부상한 가운데 애플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작년 6월 열린 개발자회의에서 쿡 CEO는 “우리의 목표는 세계를 바꾸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한계에 다다른 자사를 향한 외침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아이폰. 비장의 무기는 무엇일까. 취임 6주년을 맞은 쿡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울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중반 애플을 인수하려던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 창업자 스콧 맥닐리는 “쿡의 실력은 10년, 15년 지나지 않으면 모른다. 그러나 최악은 잡스의 흉내를 내는 것”이라며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