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임승태 금융채권자조정위원장 “경제 위기에 한은 통화신용정책 적극 활용해야”

입력 2017-01-06 11:27 수정 2017-01-0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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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금통위원…금융중개대출 50조까지 늘려 신성장산업·중소기업 지원을

▲임승태 금융채권자조정위원장은 “국민들에게 고도 성장을 기대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정확한 현실을 인식하고 추진력이 강한 인물을 경제 수장으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이란 기자 photoran@
▲임승태 금융채권자조정위원장은 “국민들에게 고도 성장을 기대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정확한 현실을 인식하고 추진력이 강한 인물을 경제 수장으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이란 기자 photoran@

지난해 말 서울 여의도 금융채권자조정위원회에서 임승태 위원장을 만났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관둔 지 2년 8개월 만의 만남이다. 임 위원장은 행시 출신이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초대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등 소위 ‘잘나가는’ 관료였다. 금통위원이 된 후에도 간간이 한은 총재에 맞서 본인의 소신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금융채권자조정위원회는 채권자와 채무자 간 분쟁이 법적 소송으로 가기 직전 합의를 시도하는 마지막 기구다. 이런 ‘벼랑 끝’ 분쟁을 조정해 줘야 하니 머리가 아플 법도 하다. 하지만 정부 관료, 금통위원, 금융채권자조정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이어지는 경력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진다. 거시 경제와 미시 경제, 실물 경제를 다 같이 경험해 본 보기 드문 ‘경제통’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은행의 역할을 강조했다.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선 한은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경제부총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올해 경제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미국의 금리인상이 가계부채에 어떻게 작용할지 걱정된다. 가계부채 관련 기재부, 금융위, 한은, 국토부, 고용부 등 관계부처는 물론 금리 환율 등 거시 변수가 다 연결된다. 가계는 2000년대 들어오면서 낙수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가계부채가 커지면서 이자 부담도 높아지고 있다. 통신비, 4대 보험료 등 고정지출이 1980~1990년대보다 늘어 가처분 소득도 크게 줄었다. 급격한 원금 상환을 강제하면 많이 어려워진다.”

△올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릴 수 있을까?

“경기가 안 좋아 부담이 된다. 그렇다고 추경 등 재정 정책에 맞춰 내릴 수도 없다. 가계부채 규모가 너무 크니까. 한은이 굉장히 고민할 것이다. 최근 발표된 한은의 2만 가구를 대상으로 한 가구금융조사 결과를 보면, 핵심적인 취약대출 규모를 약 78조 원으로 잡고 있다. 3개 기관 이상 다중채무자이면서 소득 하위 30%이거나 신용등급이 7 ~ 10등급인 저소득자의 빚이다. 금리가 급격히 인상되면 사회적 문제 해소 차원에서 결국 정부가 합리적인 출구 방안을 고민해야 할 듯하다.”

△박근혜정부 초기 부동산 규제 완화 기조에서 방향을 틀어 8·25 대책, 11·3 대책 등 부동산 정책이 변화했다. 변화 속도와 방향에 대해 올바르다고 생각하나?

“큰 방향은 맞다. 기재부, 한국은행, 국토부, 금융위가 서로 하모니를 이루어야 상황에 맞는 입체적인 정책이 나오는데 이 정도까지는 못 미친 것 같다. 부동산 문제 관련해서 할 수 있는 툴이 크게 세금, 거래규제, 금융규제 등 3가지다. 부동산 버블일 때는 금융규제가 메인으로 등장해야 한다. 부동산 침체 시기는 세금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처음부터 LTV, DTI 등의 금융규제를 적절히 운용하여 금융기관의 시스템 리스크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의 구조조정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금융적 관점에서 구조조정했다는 평가가 맞다. 그런데 쉬운 것은 아니다. 조선·해운 경기가 어떻게 될지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정부는 이번 상황이 IMF(국제통화기금·1997년) 때의 구조조정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글로벌금융위기(2008년) 당시 한국에는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없었다. IMF 때는 재무적 구조조정만 하면 됐다. 지금은 구조적 장기 침체에 놓여 있다. ECB와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했다. 성장엔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제는 재무적 구조조정만으로는 못 산다. 사업적 구조조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산업 재편, 기업 재편을 포함하는 의미다.”

△관계장관 회의를 통해 산업 재편을 했지만 한계가 있다는 평이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

“과거 구조조정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재무적 전문성은 나름 축적되어 있다. 문제는 산업에 대한 뷰가 없다는 것. 민간 전문가를 활용해야 한다. 재무적 전문가, 산업 전문가, 연구원, 기업인 등이 참여해야 한다. 앞으로 시장 수요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분석하고, 이들이 플랜을 만들어 구조조정을 실행해야 한다.”

△지난해 경제, 구조조정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역할했다고 보나?

“힘들었겠다 싶다. 종전의 구조조정과 다르다. 다만 이 부분을 말하고 싶다. 구조조정을 진행할 때 결정권자는 정부, 구조조정 방안을 가져오는 것은 시장 전문가들이다. 구조조정이 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구조조정에서 벌어진 일은 면책을 해줘야 한다. 감사원이 사후적 결과를 두고 책임을 물으면 아무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옛날처럼 재무적 구조조정만 하면 쉽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올해도 구조조정이 이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주목할 부분이 있나?

“지난해 해운·조선업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이제 실업 문제가 등장할 때다. 구조조정을 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산업의 씨앗이 죽으면 안 된다. 이를 ‘이력효과’라고 한다. 이력효과란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사람을 해고하면 이 노동자들이 자기 기술을 잊는다. 이들의 기능, 숙련도, 교육을 잃어버리는 것은 큰 손실이다. 구조조정을 할 때 사회적 안전망 + 이력효과가 유발되지 않을 정도의 서포트가 필요하다. 이건 정부가, 재정이 해야 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시급하다.”

△새 정부에서는 어떤 인물이 경제부총리가 되어야 할까?

“한국 경제의 현 위치와 좌표가 어디인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 특히 시장과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장을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 아울러 지금은 행동력을 요구한다. 경제 위기일 때는 결단력 있고 추진력이 좋은 사람이 필요하다.”

△최근 기재부가 발표한 2017년 경제 정책 방향을 보니 경제 성장률이 부정적이다. 조기 대선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경제 정책을 잘 이끌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지금 정국에서 기재부는 다음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경제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무엇을 더 잘하겠다는 것보다 새로운 위험이 들어서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새 정부가 들어서면 그 즉시 행동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액션 플랜을 짜서 넘겨주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고도 성장을 기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성장 잠재력이 3% 초반이라는 것이 분석 결과다. 이번 발표에서 왜 전망을 안 좋게 보고 있는지 구체적인 숫자로 설명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보통 기재부는 성장률 달성 의지를 담아 낙관적으로 목표치를 잡는데, 올해는 경제 상황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계부채 규모가 너무 커서 정부가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한은이 아주 유능한 구원투수다. 어느 나라나 중앙은행이 나서고 있다. 유로 사태를 겪고 난 뒤 재정건전성에 대한 경계심이 크다. 지금 정부 부채 비율이 40% 수준이라 여력은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나머지는 통화 신용 정책밖에 없다. 원래 경제 정책은 통화 신용 정책과 재정 정책이 기본이다. 금융 정책은 보완적인 정책이다. 재정 정책을 충분히 자유롭게 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통화 신용 정책을 활용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통화 정책만 주로 사용했지, 신용 정책은 제대로 활용해 보지 못했다. 한은에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이란 제도가 있는데, 현재 25조 원 수준인 이를 50조 원까지 늘려야 한다. 온렌딩 방식이다. 직접 운영하는 게 아니라 은행에 돈을 싼 이자로 빌려 주면서 가이드라인을 주면 된다. 성장성 있는 기업, 신성장·중소기업 등에 지원하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은행이 자기 돈을 매칭해 성장성 있는 기업에 뿌릴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중앙은행이 개입할 수 있는 정당성을 금융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금융 포용 정책’이라고 한다. 즉, 금융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또한 중앙 은행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임승태 위원장은

임승태 금융채권자조정위원장은 경기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행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재정경제부 관세국, 보험국, 금융국 등을 거쳤으며,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쳤다. 2005년 금융정책국장을 지냈고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분리·신설한 금융위원회의 초대 사무처장을 맡았다. 이후 2010년부터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냈으며, 임기를 마친 뒤 2014년 한국금융연구원 특임연구실 초빙 연구위원으로 선임됐다. 현재 금융채권자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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