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유럽연합(EU)과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협상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임한 이반 로저스 EU 본부 주재 영국대사의 후임을 임명했다.
영국 정부는 4일(현지시간) 로저스 대사의 후임으로 전 러시아 주재 영국대사를 지낸 팀 배로우를 임명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로저스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파문이 확산되자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고자 베테랑 외교관을 서둘러 임명한 것으로 보인다. 배로우는 다음주에 공식 취임한다.
영국 총리 관저 대변인은 “숙련되고, 협상 능력이 탁월한 배로우가 다른 각료와 함께 영국의 EU 탈퇴를 성공적으로 이끌 것”이라며 그의 취임을 환영했다.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도 “배로우는 영국에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줄 인재”라고 평가했다.
배로우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영국의 EU 대표부에서 정치와 안보를 담당했다. 2015년까지 러시아 주재 영국대사를 역임하고, 현재는 중동 등의 안보를 담당하고 있다. 그의 외교 경력이 30년에 달하는 만큼 지난 3일 돌연 사임한 로저스의 공백을 메꿔줄 적임자로 평가된다. FT도 “배로우 기용은 풍부한 외교 경험에 중점을 둔 안전한 선택”이라고 평했다. 배로우는 “매우 중요한 시기에 대사로 임명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성명을 냈다.
앞서 로저스 전 대사는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고 갑작스럽게 사의를 밝혔다. 3월쯤으로 예상되는 영국과 EU 간의 브렉시트 협상을 앞두고 발표된 것이어서 영국과 EU 간 협상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로저스 대사는 브렉시트 협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6월 실시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EU 측에 요구했던 EU 내 영국 지위 변경에 관한 협상을 이끌었다. 당시 EU 측은 브렉시트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고자 영국 측이 제시한 요구조건들을 대부분 수용했다.
일각에서는 로저스의 사임이 최근 영국 내 브렉시트 강경파 쪽에서 로저스 대사의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나왔던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BBC 방송은 “정부 내에서 다소 감정적 인 충돌이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로저스 대사가 영국 장관들과 가진 비공개 회동에서 “EU와의 새로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이것이 갑작스러운 사임의 원인일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것. 당시 총리 대변인은 “2년이면 충분하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싱크탱크인 센터 포 유러피언 리폼의 찰스 그랜트 디렉터는 “이반 로저스는 영국 정부 내에서 EU를 이해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라며 “브렉시트 협상에서 메이 총리가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 낼 능력이 약화했다”고 지적했다. 야당인 노동당은 시간이 없다며 로저스 대사의 후임 선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메이 총리에 촉구했다.
메이 총리는 조기에 로저스의 공백을 메꿔 브렉시트 협상 준비를 본격화할 의향이다. 그는 늦어도 3월 말까지는 EU에 영국의 탈퇴를 공식적으로 통보하고 협상에 들어간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리스본 조약에 따라 영국은 탈퇴 통보 후 2년 안에 EU와 탈퇴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EU 측은 3월에 영국이 탈퇴를 통지한 경우 2018년 10월까지 협정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협상 기간은 정해져 있어 향후 배로우와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부 장관 등을 중심으로 협상을 위한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