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은행권 인사 풍토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최고경영자(CEO)를 정점으로 은행 내 보이지 않는 권력 서열과 출신 성분에 따른 이른바 ‘라인 인사’가 줄어들고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한 ‘발탁 인사’가 늘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29일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측근 인사가 줄어들었다”면서 “인사에서 연공서열을 중요하게 여기던 트렌드가 성과주의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나친 성과주의는 금융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당분간은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인사를 단행한 신한금융, KB금융, 하나금융, 농협금융 등을 보면 이러한 성과주의 인사 흐름이 눈에 띈다.
신한금융은 차기 회장 인선을 앞둔 소폭 인사로 변화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뒀지만 큰 성과를 낸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발탁했다.
신한금융은 신한은행 이기준ㆍ허영택ㆍ우영웅 부행장보와 SBJ은행(일본 법인) 진옥동 법인장을 부행장으로 내정했다. 이 중 허 부행장보, 우 부행장보가 1년 만에 부행장으로 승진했으며, 진 법인장은 이례적으로 두 계단 승진했다.
진 부행장은 SBJ은행의 순이익을 많이 증가시킨 점을 인정받아 발탁됐다.
SBJ은행의 세전 당기순이익은 2014년 28억4000만 엔에서 2015년 62억1000만 엔으로 2배 이상 뛰었다. 올해도 10월 말 현재 57억5000만 엔의 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최고 실적 경신을 눈앞에 뒀다.
박우혁ㆍ주철수ㆍ고윤주ㆍ김창성 본부장은 승진해 신임 부행장보로 내정됐다.
KB금융은 금융지주 최초로 여성을 계열사 대표로 내정했다. 신용정보회사의 수익성 악화 등 업계 전반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영업통으로 잔뼈가 굵은 김해경 KB신용정보 부사장을 대표로 선임했다. 김 내정자는 국민은행 강동지역 본부장, 북부지역 본부장 등 주요 영업총괄 업무에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KB금융은 조재민 전 KB자산운용 사장을 3년 만에 다시 불러들였다. 조 내정자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KB자산운용 재임기간 가치투자펀드, 인프라 펀드 등 신규 펀드를 포함한 펀드라인업 구축, 지속적인 운영성과 제고로 운용자산(AUM)을 약 30조 원까지 증대시킨 바 있다.
특히 KB금융은 윤종규 회장의 첫 경영실험인 ‘지주ㆍ은행ㆍ증권’ 3사 겸직 체제를 이끌 적임자로 박정림ㆍ전귀상 부사장을 선택했다.
박 부사장은 KB국민은행 여신그룹 부행장에서 지주사로 자리를 옮겨 WM(자산관리) 부문을 총괄한다. 박 부사장은 영동여고와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국민은행 제휴상품부장, WM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 부사장도 국민은행 CIB(기업투자금융)그룹 부행장에서 지주ㆍ은행ㆍ증권의 기업 관련 업무를 총괄한다. 전 부사장은 동성고와 부산대 경제학과, 헬싱키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국민은행에서 대기업영업본부장, 기업금융그룹 전무 등을 거쳤다.
현대증권과의 성공적인 통합을 주도한 이동철 KB금융 전무는 전략총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사장은 제주 제일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튤레인 로스쿨(국제법)을 나와 국민은행에서 뉴욕지점장, 경영관리부장, 전략담당 상무 등을 지냈다.
리스크관리 총괄 김기환 상무와 홍보브랜드 총괄 신홍섭 상무는 각각 전무로 승진했다.
국민은행은 허정수 KB금융 전무가 경영기획그룹 부행장으로 승진 이동했으며, 오평섭 개인고객그룹 전무를 고객전략그룹 부행장으로, 이용덕 중소기업금융그룹 전무를 여신그룹 부행장으로 각각 승진 발령했다.
KEB하나은행은 영업실적이 우수한 영업점장을 본부장으로 대거 승진시켰다. 하나은행은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인 본부장의 40%를 교체했다. 은행장과 상임감사를 제외한 임원 62명 중 26명(41.4%)이 승진했다.
하나은행은 무엇보다 ‘젊은 피’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번에 부행장으로 승진한 한준성·정정희·장경훈 전무는 모두 50대이다.
한 부행장은 핀테크 등 은행의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부행장으로 선임됐다.
농협은행은 부행장의 80%를 물갈이하는 대폭적인 쇄신인사를 했다. 농협은행은 부행장보를 포함한 11명의 부행장 가운데 9명을 바꿨다.
농협금융은 계열사 사장 인사를 하면서 통상 2년간 보장했던 임기를 1년으로 단축했다. 더불어 농협금융은 농협은행의 이성권 부장을 NH선물의 사장으로 발탁하는 파격 인사를 했다. 이는 김용환 회장이 취임 이후 강조해 온 전문성과 성과중심 인사 원칙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